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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교회, 세한성결교회 주남석 목사-성령께 의지하며 달려온 길
작성일[2008/07/03 15:56:07]    
 
   

세계속의 한국교회, 세한성결교회 주남석 목사
성령께 의지하며 달려온 길 


30여년 가까이 세한교회를 섬겨오면서 주남석 목사가 가장 중요시 했던 것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헌신하고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다. 성령충만해서 열정을 갖고 사명 잘 감당하자고 성도들을 향해 늘 강조해 왔고, 수원시 복음화율 100%를 목표로 전 교우들이 함께 정진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속의 한국교회로, 세계선교와 한국복음화의 사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느 섬 교회로 부흥집회를 인도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신자 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 동네 전체 인구의 70~80%를 차지한다고 해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요.”
세한성결교회 담임 주남석 목사는 굳이 목회의 승패를 가늠한다면, 그 잣대는 교회 건물의 크기나, 교인수 보다는 그 지역 사회에서의 복음화 율로 삼아야 하지 않냐고 말한다. 현재 세한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 수원지역의 복음화 율은 20%선, 주남석 목사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욕심 부리지 않는다. 목회는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님을 일찍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무엇을 한다고 나섰다면,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께 의지하고, 성령의 인도함 속에 맡겨진 목양지에서 최선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습니다.”
그 열매가 한국교계가 주목하고 있는 현재의 세한성결교회다. 29년 전 전도사로 천막교회를 개척하여 오늘, 도심 속 전원교회에 비유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 속에 우뚝 선 세한교회를 이루기까지는 말할 수 없는 고난과 눈물의 헌신이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확고한 믿음, 참고 또 참을 수 있는 무한 인내력, 무지막지하게 일해도 끄떡없는 체력, 그리고 교회가 커지고 높은 자리에 세워져도 변함없이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세한교회를 이룬 주남석 목사만의 비결일 것이다.
지난 4월에는 사단법인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대표회장 임종달 목사)에서 제정한 제 5회 The Holy Spirit’s Man Medallion 목회자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어 목회사역의 실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세계 속의 한국교회로, 세계선교와 한국복음화의 사명에 앞장서는 세한교회 속으로 들어가 봤다.

혹독한 시련을 넘어 기적을 만나다
세한교회가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연 것은 1979년 7월 27일로 주남석 목사가 신학교 2학년 때다. 모태신앙인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했지만 성장하면서 요나처럼 군대로 도망가다시피 했다. 육군 장교로서 직업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하루속히 진급하여 별을 다는 출세가도를 달리는 것이 꿈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잘나가면 잘나갈수록 가시방석이었다. 3사단에서 최전방 철책 중대장을 마치고 최전방 7사단 화천지역에서 연대 작전 보좌관과 사단 사령부 정보과장, 작전과장을 거치면서 대위에서 소령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던 그가 느닷없이 연세대학교 학군단에 지원하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래도 소령 진급과 장차 별을 달게 될 것이었다는 강한 미련 때문에 점심시간만 되면 학교 뒷동산을 올라갔고, 이곳에서 작정기도까지 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기도제목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할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정 원하신다면 환갑잔치 이후에나 신학을 공부하겠다. 면서 피해갈 궁리를 하며 기도하다가 오히려 하나님께 사로잡혀 꼼짝도 못하게 된 것이다.
이후, 군대에서 허송세월한 것만 같아 하나님께 한없이 죄송스러웠던 그는 마음이 급했다. 서울신대에 편입을 해서, 목회 수업을 받은 것은 실상 한 학기에 지나지 않았기에 교회창립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일이었으나, 당시 그에게는 환경이나 상황 보다 사명에 대한 뜨거움과 주님이 함께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더 컸다.
수원시 화서동 고양골이라는 정씨 집성촌 외곽 지역에 폐사된 양계장 땅 200평을 어렵사리 빌려 22평 천막을 쳤다. 강대상, 피아노 등 각종 집기도 마련하는 등 2달여간 열심을 내었다. 이 과정에서 주남석 목사와 가족들은 혹독한 고난과 함께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된다. 창립예배를 드리기도 전에 천막교회가 3번이나 철거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천막을 친 30미터 앞에는 400년가량 된 큰 나무가 있고, 그 옆에 동네 신(神)을 숭배하며 제사를 드리기 위한 서낭당이 세워져 있었다. 그 곳에는 고양골 주민들이 약사님이라고 모시는 돌부처 3개가 있는데, 교회 창립을 준비하던 어느 날엔가 주남석 전도사 부부는 그 밑에서 밤 열한시 까지 “하나님 이곳에 교회를 꼭 세워 주세요”라고 간절한 기도를 했었다. 사건은 그 다음 날 벌어진다.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오후 3시경 갑자기 그 나무가 넘어지면서(사진③, 그날 저녁 동네 사진관에 의뢰해 촬영한 것이다.) 서낭당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주민들은 유명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을 했고, 예수신 때문에 자기들이 섬기던 약사님이 무너졌다고 주장하며 말할 수 없는 핍박을 가해 왔다. 주남석 전도사 가족들은 생명을 걸고 금식하며 기도에 매달렸고, 하나님의 교회가 반드시 세워진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결국 다시 세워진 서낭당은 얼마 못가 그 지역이 초등학교부지(현 화양초등학교)로 선정되어 다시 헐리고 만다. 천막교회는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는 산 증거의 장소가 된 것이다. 개척 후, 성령 치유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고, 많은 환자들이 병에서 해방되는 기적이 일어나곤 했다. 좁은 천막교회는 소문의 소문으로 전국 각지에서 중증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어머니 임종순 전도사와 아버지 주총전 권사, 그리고 오은경 사모의 동역은 주 목사에게는 큰 힘이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역사와도 같은 일들이 숱하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천막교회의 사정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주남석 목사의 부모님과 두 아들은 화서주공아파트 2단지 전세로 살고 있었고, 사모와 주 목사는 천막 안(사진②)에서 기거했다. 큰 불이 날 뻔 한 적도 있고, 도둑이 들어 온 적도 있었다. 설교를 하려고 하면 강대상에 개구리들이 슬글슬금 기어 올라오기도 하고 파리가 하도 많아서 천막 속에다 끈끈이 줄을 매달기도 했다. 한여름 찜통더위도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하나님이 훈련시킨 하나의 과정이라고 주 목사는 말한다.

천막교회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던 주남석 전도사는 성전대지와 교회 건축을 위해 하나님께 금식하며 떼쓰듯 매달렸다. 그 결과 개척 3개월 만에 마을 서낭당 가까운 곳에 100평의 성전 부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는 군대생활을 통해 장만했던 집 한 채를 바쳐 이를 매입했고, (1차 성전 건축 후 다시 68평의 땅을 매입했다) 땅을 산지 6개월 만에 성전 기공예배를 드리고 이듬해에 지하 22평과 본당 60평으로 연 82평의 성전을 기적적으로 건축하여 입당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건축 당시 우리가 가진 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돈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일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천막치고 개척할 때와 성전 부지 구입 때 군 생활을 청산한 후 받은 퇴직금과 피아노 등이 활용되었고, 그 외에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세우는 교회이니 마땅히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시작했죠.”

1년여의 천막생활을 마치고 40여 명의 신자들과 함께 새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최선을 다한 목양과 열심 있는 전도활동으로 4학년 전도사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200여 명 신자로 부흥시켜 주셨다. 그리고 1차 성전건축을 한지 2~3년이 지나지 않아 2,3층을 증축할 수 있었다.지속적인 성장은 5부까지 예배를 드릴 정도로 성전이 비좁아졌고, 새 성전 건축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극한의 고통 믿음으로 이기며, 새 시대 열다
드디어 1989년 구 성전 앞 화서역 반대쪽에 있는 자연 녹지 720평을 매입하고, 얼마 후에 확장하면서 1,700평이 되어 제법 규모 있는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문제는 자연녹지여서 규제가 풀려야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 목사는 성전의 모형도를 그려놓은 그림을 모든 성도들에게 나눠 주고 함께 마음속에 품어가며 7~8년을 기도했다. 그 그림이 현재 성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심 속 전원교회처럼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교회 앞으로 버스가 다니는 꿈을 꾸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주신 것이라고 주 목사는 말한다.
새벽예배를 마치면 그곳에 가서 여리고 작전을 펼쳤고, 눈·비가 올 때는 현대판 여리고 작전이라며,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기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이 은혜가 되어 지방회 체육대회 때면 목회자 달리기에서 주남석 목사는 항상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쉬지 않는 기도가 오랜 인내 속에 응답을 받게 된다. 택지 개발지구로 지정되어 있던 새성전 부지는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기적적으로 그 곳을 1996년도에 수원시에서 직접 관리하게 되어 땅으로 직접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교회 부지를 제외한 주변의 다른 지역이 토지 개발공사에 넘어가면서 거의 보상을 받을 수가 없게 된 것과는 달리 세한교회는 일월택지개발공사라 하여 수원시에서 직접 관리해서 1000여 평을 받았고 빼앗긴 땅 500여 평은 교회 앞 정원처럼 활용하게 해 주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단의 방해는 더욱 거세어졌다. 기공예배를 드리고 한 달 만에 IMF가 터졌다. 지하 1,2층(700평씩 1400평)을 파놓고 일부분 콘크리트작업을 하다가 업자가 손을 들고 도피했고, 하청업자는 돈을 못 받았다고 교회에 와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주변은 논바닥이었지만 성전 뒷면은 10여 미터 이상 되는 높은 삼환아파트 벽이었다. 그 벽이 무너지면 가까운 아파트가 무너질 상황이어서 아파트 주민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수원시에서는 장마가 시작되면 위험하다고 장마 전 빨리 건축하라고 경고를 보내 왔다. 이러한 사실은 지역 일간신문에도 기사화 되어 상황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풍전등화 같은 상황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때 주 목사는 완전히 죽는 줄로 생각했다고 한다. 목숨 건 기도의 사투를 벌렸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했다.
제일 급선무는 삼환아파트 담벼락이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무너지면 가까이 있는 아파트 한 동에 금이 가든지 무너져 버리게 된다. 더욱이 주 목사를 괴롭힌 것은 일부에서 기도 많이 한다는 4~5명의 교회 집사들이 매일 밤 모여 기도를 하다가 ‘교회 건축을 멈춰야 하며 중단하지 않는다면 담임목사가 꽁꽁 묶여  감옥에 간다. 고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다(감옥가지 않았음). 그러나 어떠한 시련에도 요동하지 않았다. 극한에 이르는 고통으로 내몰려도 하나님이 결국은 교회를 지킬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주남석 목사와 성도들에게는 있었기에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새로운 업자를 만나 다시 시작된 성전건축을 위해 성도들의 헌신은 줄을 이었다. 전세 자금을 헌금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건축헌금을 위해 파출부로 나선 이도 있고, 폐지를 주워 파는 교우들도 있었다. 사모들은 생선 판매에 나섰고, 재정부원들이 돈을 빌려오면 주남석 목사는 무조건 서명하기에 바빴다. 또한 신용카드 70장을 발급받아 매일 수억 원의 돈을 움직이기도 했다. 주남석 목사는 그 때의 건축위원들과 재정부원들의 수고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교우들 역시 모두가 내 자리를 내가 건축하자며 평당 300만원씩 작정하여 헌금에 동참했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세한교회는 계속 성장했다. 3부 예배를 드리다가 4부 예배를 새로 신설할 정도로 양적인 성장을 경험했고, 어려움을 이겨내니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교역자들과 함께한 주남석 목사와 사모)

1999년 11월 마침내 입당예배를 드렸다. 2년 후 교육관(세한비전센타) 800여 평을 지어서 총 3600여 평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다. 현재는 2500여 석의 자리에 가득 모여 주일 낮 3부로 예배를 드린다. IMF 때와 성전건축 때 인근 공원 부지에 종교부지 460평을 분양받아 그곳에 안디옥성전을 건축하여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과 목회자, 선교사들의 숙소로 활용하기 위해 현재 600평의 건축이 완공되어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한 지난해에는 경기도 광주와 이천 사이에 있는 대지 78000평을 매입하여, 이곳에 수양관을 세워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성령으로 뜨거워지는 역할을 감당해 보고자 한다.  

사명을 다하는 교회
세한교회는 오늘 이처럼 큰 은혜 가운데 성장시켜 주신 것은 교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말세에 ‘구원의 방주로써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며,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건지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한이라는 교회 이름대로 ‘세계 속의 한국교회, 세계선교 한국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지역 사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다. 
“교회의 특징적인 사역이라면, 온 성도가 복음적 일체감을 갖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헌신하는 것이죠.” 
주남석 목사는 이와 관련하여 화요신유은사집회를 통해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 충만한 가운데 능력 받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제자훈련공부, 전도폭발훈련, 바나바 사역자를 위한 공부, 성막성경공부, QT성경공부, 중보기도학교 등으로 성도들을 위한 훈련과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한다.

특히 지역 사회에 유익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세한CMS 영어스쿨을 열어서 지역의 아이들에게 방과 후에 영어를 지도하고 있다. 그리고  세한가정봉사원파견센터를 개설하여 독거노인 80여 명을 돕고 있으며, 노인대학을 운영하여 매주 400~500여 명의 어르신들에게 다양한 콘텐츠로 여가 활용을 돕고 있다. 주로 이·미용 봉사와 점심접대, 지역 사회 노후 복지를 위해 힘쓴다.
이 외에도 세한교회는 지역주민들에게 상당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문화 센터도 설치, 운영하고 있다.

(해외선교 광경 상단부터 태국, 일본, 캄보디아, 베트남)

그리고 무엇보다 세한교회 하면, 전도와 선교를 빼놓을 수 없다. 개척초기부터 세계 33개국의 선교를 지향해 온 동교회는 국내의 20여 개 이상의 개척교회 및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고 있으며, 30여 개 이상의 선교 단체 및 기관을 후원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베트남과 필리핀, 캄보디아에 직접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8명의 선교사들과 10여 개의 해외 선교단체들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한교회는 필리핀과 미국 LA에 직접 지교회를 개척하여(베트남인이 사용하던 절간 380평을 구입함) 세계 선교에 앞장서고 있으며, 젊은 세대인 청소년들과 청년들로 하여금 매년 5개 이상의 나라에 수십 명의 단기 선교사를 파송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기는데 전심전력하고 있다.

(주남석 목사 가족들)

맺는 말

‘연약한 기도에 귀 기울이시며 힘과 용기를 주셨던 하나님의 그 사랑 때문에 감사의 눈물을 거둘 수 없다’는 주남석 목사. 신앙의 동역자이자 내조자로서 늘 함께 해준 신실한 사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한없이 크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신 어머니 한분의 헌신으로 인하여 아버지(1995년도 소천)를 비롯한 일가친척들 모두가 죄의 올가미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감격은 시시때때로 밀려와 가슴 벅차게 한다. 더욱이 대를 이어 무속인 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던 집안이 이제는 대대로 하나님의 종의 사명을 감당하는 영광스런 집안으로 변화된 것에 대한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전도사였던 모친을 비롯해 여동생 주복섭 사모는 현재 전남 강진제일교회 담임 조규철 목사의 아내이며, 장남 주신 목사는 서울신대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공부하며 목회를 하고 있으며, 둘째 주진 전도사도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연합신학대학원 재학 중으로 주의 종의 길을 걷고 있다. 외조카 성현까지 신학공부(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를 시작하여 어찌 말로 다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주남석 목사의 고백이다.
주남석 목사의 목회는 자체가 감사다. 감사하는 마음은 언제나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고, 그 에너지는 교회전체에 흐르는 생동감으로 작용한다.
30여년 가까이 세한교회를 섬겨오면서 주남석 목사가 가장 중요시 했던 것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헌신하고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해서 늘 열정을 갖고 사명 잘 감당하자고 성도들을 향해 강조해 왔고, 수원시 복음화율 100%를 목표로 전 교우들이 함께 정진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속의 한국교회로, 세계선교와 한국복음화의 사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남석 목사 약력

* 서울신학대학교 및 대학원
* 미국 임마누엘 신학대학원(목회학박사)
* 호서대학교 행정학 석사
* 연세대학교 학군단 교관 역임
* 경기중앙지방회장 역임
* 수원시기독교연합회 32대 회장 역임
* 수원중부경찰서 경목위원장 역임
* 2002년 월드컵기독시민운동협의회
  경기도상임회장
* 새천년세계선교회 대표회장 역임
* 세계성신클럽(세계성령중앙운동협의회)
  14대 회장 역임
* 기성 총회 평신도 부장 역임
* 성결교 부흥사회 공동회장
* 수원 기독호스피스 이사
* 수원 기독교 문화원 부총재
* 한국기독교성령100주년대회 실무대회장 역임
* 서울신학대학교 이사회 감사
* 목회신학연구원 원장
* 경기도 기독교연합회 공동회장

 

(이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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