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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 행복을 주는 호산나교회-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하나님 나라 세워간다
작성일[2008/09/26 14:23:08]    

꿈과 희망 행복을 주는 호산나교회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하나님 나라 세워간다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 이미 약속의 땅을 허락받은 전찬영 목사. 절대 순종과 무한 헌신, 영성목회로 오늘의 호산나교회를 일구어 왔고, 지난 1년 2개월간 고속도로를 달리듯 일사천리로 새 성전을 완공했다. 이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성도들의 철저한 준비, 그리고 더 큰 사명을 감당케 하시려는 주님의 뜻일 것이다.


처음 꿈을 꾸고(더 정확한 표현은 환상이 옳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은 24년 만인 1999년이었다. IMF가 터지고 디지탈산업단지에 빈공장들이 늘어갈 즈음, 금천구 독산 1동 151-5호 소재, 공장 하나를 매입하게 된다. 그리고 2년도 채 안돼 바로 옆 151-6호 공장 사장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그 땅도 매입하게 되어 공장 2개는 전찬영 목사가 첫 목회를 할 때, 보았던 환상처럼 호산나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당시 성산중앙교회) 그리고 교회다운 교회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10여년 가까이 기도하고 준비하며, 소원하던 새성전을 올해 드디어 완공하고 지난 5월 25일 봉헌예배를(본지 6월호 14,15쪽) 드렸다. 하나님께서 일찌기 예비하신 약속의 땅에 아름답고 웅장하게 세워진 새성전을 전초기지 삼아 호산나교회는 지역과 민족, 세계를 향한 구령열을 불태우고 있다.

약속의 땅에서 재도약 시작 

그 환상은 1975년 수원동지방 성은교회에서 첫 담임목회를 하던 어느 날의 일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찬영 전도사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대도시의 시장이 그를 찾아오더니 텅비어있는 공장지대로 안내를 하더란다. 지역은 알수 없었으나 빈 공장들이 즐비했고, 그 중 슬래브 지붕에 블럭 건물의 공장 2개가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안내를 하던 시장이 “이것을 드리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질문을 해왔다. 그의 답은 “교회를 지어야지요” 였다.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꿈이었다. 그곳이 현재 새성전이 우뚝 서 있는 바로 그 장소, 금천구 독산 1동 151-5,6호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은 날이 갈수록 전문가들이 말하는 가장 적합한 교회 장소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일부 아파트 단지는 이미 조성된 상태이고, 교회 앞 300미터 떨어진 디지탈산업단지는 뉴타운 건설이 확정, 2~3년 후면 개발이 시작되어 대단위 주택단지가 조성되는 황금어장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주민총회가 교회에서 열리기도 했으며, 앞으로도 주민들의 모임이 계속 호산나교회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수대로와 제2경인고속도로, 서부간선도로 등 도로망이 뚫려 처음 예배를 드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성전건축 과정도 모든게 은혜스러웠던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마음은 간절했으나, 교회의 형편과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라 쉽사리 성전건축에 대해 언급할 수 없었던 전찬영 목사는 결국 2003년도에 사흘 밤, 낮을 잠 한숨 못자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단을 내리게 된다. 더이상 미룰수 없음을 확신한 전 목사는 교우들의 형편 보다는 주님의 뜻이 먼저였다. 이때 3년 기한의 정기 적금을 붓기 시작했고, 성전건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2006년에 적금 만기가 되자, 새성전 건축에 대한 열망이 절정을 이루고, 2007년 2월 5일 그렇게도 소망하던 새성전 건축의 첫 테이프를 끊게 되었다.
봉헌하기 까지 죽도록 충성하고 순종하느라 힘겨웠을 성도들이지만, 새성전 건축이 진행되는 1년 2개월간 참으로 가슴 뛰는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대 공사가 진행되는데도 민원하나 없었고, 하루가 다르게 모양새를 갖춰가는 교회의 모습에 교우들은 감동하며, 완공의 그날을 설레이는 가슴으로 기다려 온 것이다. 날씨조차 공사진행을 도와 시공사인 하늘종합건설사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정도였다.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 시기의 건축으로 말미암아 요즘 일고 있는 자재난도 피할 수 있었다.

죽도록 충성하고 순종으로 세워진 새성전

올 3월 2일 감격적인 입당예배를 드리고 나자, 각지에서 새성전을 견학하러 오는 교회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설계를 맡은 야긴건축사(대표 최두길 교수)에서도 탐방 코스로 호산나교회를 소개하고 있으며, 방문자들은 웅장하고 견고하면서 섬세한 교회 전경에 감탄하곤 한다. 특히 본당 인테리어에 많은 관심들을 보이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초 1500석이던 예배당 규모가 인테리어로 인해 1300석으로 공간이 줄어들었을 정도로 내부 환경에 심혈을 쏟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 담임 전찬영 목사가 ‘은혜와 감격이 회복되는 예배’, 즉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예배에 목회의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음향시설에도 연결되어 최고의 시스템을 갖추는데 주력했다. 소위 말하는 멀티미디어 음향을 설치해 영상과 음향을 고려한 설계로, 본당의 기둥을 없애고, 천정의 높이를 더 높여 시원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 새가족들도 당황하지 않고 성경을 보고, 찬양할 수 있도록 영상에서 자막화하여 신앙생활에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주민 친화적인 새성전은 가장 왕래가 편리한 1층에 행복식당과 호산나까페가 자리잡도록 했다. 까페의 경우는 교회 출입구를 통하지 않아도 직접 외부에서 왕래가 가능하도록 별도의 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에덴정원과 연결되어 까페의 연장선상에서 차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장소로 배려하고 있으며, 이곳은 북까페를 겸한 독서의 공간이기도 하다. 행복식당은 주방에 롤스크린을 치면 바로 세미나실로 변해 활용도를 높였다. 이 외에도 1층에는 은혜홀과 알파실, 비전홀 등이 있으며, 2층에는 벧엘성전과 각 기관사무실이, 3층과 4층에는 대예배실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3층에 새신자 환영실인 아가페홀이, 4층에는 자모실과 방송영상실 등이 있다. 제일 높은 5층에 하늘정원과 종탑이 있으며, 호산나교회를 가장 호산나교회 답게하는 곳, 개인기도실이 지하 1층에 9개가 있고, 이곳에서 중보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는 언제든지 예배에 지장만 없으면 개방을 원칙으로 한다. 교우들 뿐 아니라 외부에서 요청해도 결혼예식이 가능하며, 이미 뉴타운 건설과 관련 주민들의 모임을 두차례 가진 바 있다. 인근 중학교에서는 합창경연대회를 동 교회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주민 친화적인 교회 설계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지역주민들을 염두에 두고 계발, 준비하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민들을 섬기겠다는 각오다. 그동안은 마음은 간절했어도 새성전 건축이라는 대명 앞에 집중하느라 여력이 없었다. 노인대학도 계획하고 있으며, 어린이집은 2009년부터 실시하기 위해, 현재 그 준비를 위해 실무진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봉사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이다.
새성전 완공과 함께 또 하나의 변화는 교회명이다. 새로운 마음가짐과 각오로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다짐 속에 교회명을 변경하기로 하고, 교우들의 투표에 의해 선정된 「호산나」가 새로운 교회명이 된 것이다. 지난 봉헌예배 설교를 통해 신경하 감독회장은 ‘호산나는 구원의 집,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라면서, 이 지역의 영적센터로써 이름값을 제대로 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전한 바 있다.

헌신으로 세워지다

호산나교회가 성산중앙교회로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연 것은 1976년 10월 24일 궁정교회(당시 담임 구본홍 목사)에서 서울시 구로구 독산동 60-54에 마련해 준 13평 규모의 2층 건물에서 창립예배를 드리면서다. 교인이라고는 가족들이 전부였을 정도로 미약한 출발을 했다. 4식구가 함께 잠을 자기에도 힘들었던 비좁은 단칸방 때문에 전찬영 목사는 저녁 식사 후면 교회로 가는 것이 일이었고, 철야기도는 안할 수 없어서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금식기도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족들은 일가 친척들과는 무조건 접근 금지였다.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철저했던 전 목사는 사모의 교사생활도 첫 목회지인 수원으로 가면서 중단시키고 철저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목회에 임했다.

교회학교 교사와 사찰 등 1인 몇 역을 감당하면서 2년쯤 지나자 구로구 독산 3동 232-23 소재의 대지 120평 땅을 매입하게 된다. 계약금 외에는 전부 빚이었다. 빚에 또 빚을 얻어 320평 건물을 건축하게 된다. 당시 교인들이래야 40여 명 정도였기 때문에 건축비 1억 7천은 엄청난 무게로 짓눌렀다. 전찬영 목사는 1년 사례비 140만원 헌금으로도 부족해 1년에 50주 부흥회 강사로 뛰면서 주어지는 모든 사례비를 건축헌금 하기에 바빴다. 생활은 목회비 2만원이 전부였고, 건축빚 때문에 부흥회를 더 나간 것도 사실이다. 그 생활을 무려 15~6년을 지속했다. 하나님이 전 목사를 그렇게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 덕에 그는 성대 수술을 3번이나 받아야했고, 영성은 말할 수 없이 강해지고, 지금처럼 허스키하면서도 은혜스러운 음성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고생인줄 몰랐다는 게 하나님의 더 큰 은혜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마땅히 거쳐야 할 과정으로 여겼던 것이다. 다만,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모님에 대한 회한이 크다. 오늘의 전찬영 목사를 만든 장본인이며, 큰 일을 이룰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고, 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어서 안타깝곤 했다. 지난 5월 25일 봉헌예배를 드릴 때, 축사를 전한 김승현 감독(중부연회, 성일교회)도 자신의 부모님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전찬영 목사의 부모님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의 호산나교회가 되기까지는 그 분들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32년 전 고향땅 강화 길촌마을에서 전재산을 처분하고, 개척의 기반을 다지게 했을 뿐 아니라, 하나 뿐인 아들(1남 4녀 중 셋째)이 목사가 되는 것을 소원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해 오신 분들이다.

8년 전 감리교전국부흥단 대표단장에 취임할 때도, 전찬영 목사는 소감을 전하면서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었다. 그때 이미 부친 전창수 장로가 소천한지 14년이 되었을 때다. 새성전이 완공되고, 입당과 봉헌식을 갖으면서 그는 또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다. 창립예배를 드릴 때, 그리고 빚더미 위에서 였지만 처음으로 교회를 건축하고 입당할 때, 그렇게도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제가 이 자리에 서게된 동기부여와 원동력은 모두 아버님의 믿음과 후덕함의 영향입니다.” 8년 전 전국부흥단 대표단장에 취임하면서 그가 한 말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욱 간절하다. 제대로 한번 모시지도 못했다는 죄스러움과 함께 고생고생 하시던 그 어른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 누리는 기쁨이 큰만큼 송구스럽기가 한이 없다.
전찬영 목사의 부친 고 전창수 장로는 고향인 강화 길촌교회에서 일찌기 성령운동을 하며 기도대장이란 별명까지 얻은 인물이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가곤 했던 마귀들린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들이 기도로 치유되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감동적이었고 이러한 경험들이 그의 마음밭에 믿음의 씨로 뿌려져 그가 목회자가 되고 부흥사로 활동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인천중학교와 제물포고등학교에서 수재로 명성을 날리던 청소년기 그의 꿈은 목사를 소원하던 부모님의 뜻과는 다르게 의학박사였다. 그러나 전 목사는 자신의 뜻을 꺽을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알수 없는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달간 헤메다가 두 손을 들게 된 것. 그렇게 목회를 결심하고 감신대에 입학했으나 적응에 실패하고, 오랜 방황끝에 군제대 후 성령체험이 그를 변화시켜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이다.

꿈과 희망, 행복을 나누는 교회

“모든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새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고, 그 과정 속에 낙오자 하나 없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헌신을 마다하지 않은 성도들의 노고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전찬영 목사는 특히 1년 2개월간 개인사업까지 뒤로 미룬채 건축 현장감독으로 헌신한 최인섭 장로의 노고에 전 교우들이 감사하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새성전 건축 이후 매주일 새 가족이  끊이지 않고 있음도 감사한 일이라고.
호산나교회의 오늘과 같은 성장에는 절대 순종과 무한 헌신, 그리고 전찬영 목사의 영성목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찬영 목사 자신이 순종과 헌신에는 먼저 본을 보여 온 터이며, 성도들의 믿음의 질량과 영성의 깊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오래전부터 호산나 교인들을 말할 때 1당 100의 힘으로 표현되곤 했으니 짐작되는 일이다.
이는 무엇보다 전찬영 목사가 성도들을 위한 기도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성도들 스스로 신앙성장을 위해 기도하는 데 주력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도에 도입한 알파코스 프로그램은 이러한 동 교회의 상황에 안성맞춤이었다. 전찬영 목사는 특히 ‘새신자 정착에 유리하여, 교회의 아웃사이더에서 빠른 시간내에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용문산 수양관도 알파코스 훈련을 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1989년 12월 성도들의 영성개발을 위해 매입한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수양관은 대지 3만평 위에 대성전과 소성전, 숙소, 부속건물 등 700평 규모이며 기도원 주변이 잣나무와 유실수로 가득하여 사시사철 영혼의 안식처로 기도 응답의 제단으로 호산나 교우들의 자랑거리다.
그들은 이제, 꿈과 희망 행복을 나누어 주는 교회로써의 사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자 한다. 즉 삶의 의미와 행복을 심어주고, 영적 갈등을 해소시켜 주며,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비전있는 교회가 되겠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 사회를 책임지고 섬기는 교회, 온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하는 교회가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사명감당을 위해 펼치고 있는 신앙운동이 ‘은혜와 감격이 회복되는 예배, 성령의 능력과 응답이 나타나는 기도, 성도가 날마다 더해가는 영혼 전도,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비전, 새롭게 변화받아 풍성해지는 가정 행복, 세상과 이웃을 섬기는 봉사생활, 알파코스를 통해 일어나는 치유와 기적’이다. 
 
맺는 말
누나 셋, 여동생 하나, 외아들로 대접만 받고 성장한 전찬영 목사, 타고난 영민함으로 수재 소리를 들어가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외아들을 목사로 서원하셨던 부모님의 뜻과는 달리 의학박사를 꿈꾸었으나, 결국 오늘 목사로 서 있다. 그것도 순교적 각오로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진짜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해 늘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이런 그의 곁에는 절대적으로 지지해주는 가족들이 있다. 함께 모든 고생을 고스란히 감당해온 임경숙 사모와 1남 1녀의 자녀들은 더없는 목회의 힘이었다. 딸 전혜선 집사는 의사와 결혼하여(양성규 집사), 한때 의학박사를 꿈꾸었던 전 목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있고, 아들 전성국 목사(김광심 사모)는 감신대 졸업후 미국 클레아몬트대학에서 석사(M.Div) 학위를 받은 후, 박사학위(D.Min) 과정중에, 교회건축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일시 귀국하여 목회를 돕고 있다. 또한 외손녀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쌍동이 손주들이 그의 가족이다. 가족 못지않게 전찬영 목사에게 큰 힘을 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호산나교회 성도들이다.
전찬영 목사는 이들과 함께 32년 역사 속에 호산나교회라는 큰 사랑의 공동체로 이루었고, 이 사랑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여,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갈 것이다. 

(이수미 기자)


담임 전찬영  목사 약력

·제물포고등학교 졸업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크리스챤신학대학교 신학박사
·한국감리교 신학원 선교학 교수
·용문산수양관(기도원) 원장
·감리교전국부흥단 단장 역임
·서울남연회부흥단 단장 역임
·한국기독교교단 부흥사연합회
  대표회장 역임
·서울남연회 금천지방 감리사 역임
·21세기성장선교회 공동회장
·금천구교구협의회 부의장
·필리핀 아이타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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