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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김교철 목사의 중국 한인교회 역사(1)
작성일[2010/10/13 09:22:07]    

 중국 북경 한인교회 이야기(1)
 김교철 목사(ICM 국제유학생선교회 상임대표)

오늘날 중국(中華人民共和國)의 수도(首都) 북경(北京)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민족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되고 있는데 먼저 대한민국(大韓民國) 국적을 가진 한국인, 그리고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있는 북조선인,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朝鮮族)으로 구분되어 진다. 그 외에 미국이나 일본에서 온 교포들도 있을 것이다. 동일한 혈통을 가진 하나의 민족이나 역사의 굴곡을 거치다 보니 국적을 달리하고 있기에 각기 다른 이름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보이지 아니하는 벽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현실적 분리와 분단의 고착화를 벗어나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중국에 있는 우리 민족교회 역시 하나의 교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중국 기독교 안에 포함되어 있는 조선족(朝鮮族)교회도 우리 민족교회이며 그 뿌리를 아는 바른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교회의 동질성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뜻에서 필자는 조선족(朝鮮族)교회와 한인(韓人)교회를 둘로 나누기 보다는 하나의 한인교회라는 명칭으로 통합하여 역사를 기록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중국의 현실은 조선족교회와 한인교회를 두 개의 서로 다른 교회로 나누어 교류가 차단되어 있으나 그것은 오늘날 정치적 상황 하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고 우리 한민족의 교회는 영원한 하나의 교회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중국 북경(北京)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한중(韓中) 수교 이후 북경(北京)에서는 거주하는 한국인(韓國人)들의 증가와 함께 평신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고 성도들이 점차로 증가하자 교회를 전담해서 말씀을 전해줄 목회자가 필요하게 되어 여러 곳에서 목회자를 초빙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북경(北京)에는 여러 개의 조선족교회와 한인교회(韓人敎會)가 있다. 몇몇 알려진 북경(北京)의 한인교회(韓人敎會)들은 호텔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래서 교회 이름이 있지만 한국인들이 모여서 교회 이야기를 할 때는 모이는 호텔 이름을 부른다.
북경한인교회(北京韓人敎會)는 이제 새롭게 예배당을 마련하였으나 “21세기교회”(二十一世紀賓館)로 알려져 있으며 학원로교회는 “노동대하교회”(勞動大厦)로, 북경제일교회는 “청화빈관교회”(淸華賓館)로, 북경중앙교회는 “우전부교회”(郵電部養院) 등으로 알려져 있다.
북경의 한인교회들은 한국인들의 신앙성장과 타국에 나와 외로워하며 방황하는 한국 유학생들을 많이 돕고 있으며 좋은 협력관계를 이루고 있다.
북경의 한인교회(韓人敎會) 역사(歷史)는 중국 공산화 이전인 중화민국(中華民國)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중국 북경에 유학하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다.
북경(北京)한인교회는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선교회와 중국교회(中國敎會)까지 참여하여 설립되었다. 북경한인교회의 초창기에는 장감연합으로 회집하다가 193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분열되었으며 장로교의 경우 조선예수교장로회 봉천노회(奉天老會)를 거쳐 화북노회(華北老會)에 소속되었던 북경교회(北京敎會)의 역사와 조선감리회 북경(北京-베이징)교회의 역사는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미 언급한대로 오늘날 북경(北京)의 우리 민족교회는 조선족교회와 한인교회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정치와 시대적 상황 때문에 구분되어 있는 것이므로 북경의 우리 민족교회의 역사를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수도 북경(北京)의 한인교회가 과거와 현재에 어떠한 상황 하에서 어떠한 신앙의 굴곡을 거쳤는지를 바로 알고 이해하는 일은 우리 민족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가져다 줄 것이다.
중국(中國)의 수도 북경은 약 1,300여 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로 중국의 정치(政治), 행정(行政), 학술(學術), 문화(文化)의 중심지이며 1928년에 국민당(國民黨) 정부는 수도를 지금의 남경(南京)으로 옮기면서 북경(北京)을 북평(北平-베이핑)이라 낮춰 불렀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북경은 일본(日本) 군대에 의해 점령당하였으며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옛 이름 북경(北京)을 되찾았다.
개신교 선교사(改新敎 宣敎師)들은 18세기부터 북경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였으며 다수의 교회들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중국 대륙(大陸)이 공산화되면서 교회들은 시련을 당하게 되었고 마침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中國)이 개방정책(開放政策)을 시행하면서 10여 년이 지난 1990년 11월 현재 북경(北京) 시내에는 재적 신도 1,500여 명의 숭문문교회를 비롯하여 5개의 교회가 문을 열었으며 신도들 역시 증가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 1995년 4월에 숭문문 교회를 방문하였는데 한족(漢族) 중국인(中國人) 성도 2,000여 명과 조선족(朝鮮族) 500여 명이 회집하고 있다고 하였다.
당시 숭문문교회의 조선족 목사는 장진만 씨이며 전도사 장진옥 씨가 시무중이라고 하였다. 중국교회 개방 이후 현재 북경(北京)에는 연경신학원(燕京神學院)이 운영되고 있으며 개방된 교회들이 있다.
중국에서 조선족(朝鮮族)으로 자리 잡은 우리 민족 백성 가운데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중국인(漢族)교회를 예배장소로 빌려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한국에서 진출한 한인들은 호텔들을 빌려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북경한인교회(北京韓人敎會) 設立(1923年) 배경(背景)
오래 전부터 다수의 한인(韓人)들이 북경(北京)을 왕래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청나라 시기에는 많은 한인들이 청나라로 포로를 끌려가서 살았으며 일제(日帝)의 한반도 강탈 이후에는 뜻 있는 애국지사들이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북경에도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일어나던 시기에도 한인들이 북경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으며 그 가운데는 유학과 여러 목적으로 건너온 이들도 다수 있었다.
1912년에 북경에 거주하던 한인 가운데 널리 알려진 유학생으로는 백영엽 씨를 들 수 있으며 그는 유학생의 신분으로 돈이 넉넉하지는 못하였으나 당시 돈 50원을 국민의연금으로 내면서 일장 연설을 하여 중국인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당시 북경에 거주하는 또 다른 한인동포 윤영준 씨는 본래 뜻이 있는 선비로 남의 일을 나의 일과 같이 생각하고 100원을 국민연회 제1차 개회석에 의연하니 만당(滿堂) 인사가 뜨거운 동정을 표하여 크게 환영한 일이 있었다.
1913년 당시 북경(北京)에 유학생(留學生)으로 공부하던 유각경(珏卿) 씨가 거주하고 있었으며 中國부녀 청년회 소식을 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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