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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김교철 목사의 중국 한인교회 이야기(3)
작성일[2010/10/15 16:56:18]    

 중국 북경 한인교회 이야기(3)
 김교철 목사(ICM 국제유학생선교회 상임대표)

◆북경한인교회의 조직(北京韓人敎會 組織)
북경한인교회(北京韓人敎會)는 교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이사회(董事部)를 구성하게 된다. 이사회는 한인(韓人) 2명과 중국인 목사 3명 그리고 서양(西洋) 선교사 2명으로 구성하였다. 이사부 부원 7명 가운데 한인 이사로 참여한 사람은 김문옥(金文玉) 장로(長老)와 조 영(趙 英) 장로였다.
김문옥과 조 영 장로는 별로 알려진바 없어서 잘 알 수 없으나 북경한인교회 설립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인물로 기억해야 될 것이다.
조 영(趙 英) 장로는 1924년 2월3일 등시구(燈市口) 공리회(公理會) 부당(副堂)에서 개최되었던 북경고려청년회(北京高麗靑年會) 임원 총선거회에서 총무로 선출된 중요한 인물이다.
조 영 장로는 북경고려청년회(北京高麗靑年會)에서 중요한 실무자로 활동하였으며 북경한인교회 장로(長老)로도 활동하였다.
북경한인교회 이사회에 3명의 중국인 목사들이 이사로 참여하였는데 한중(韓中)교회사적 측면에서도 상당히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었다.
즉 중국교회가 북경(北京)에 거주하는 한인 활동과 교회설립에 참여하여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인(中國人) 이사(理事)로는 보광림(寶光林) 목사와 고천우(高天佑) 목사 그리고 장지신(張志新) 목사가 참여하였다. 세 명의 중국인 목사들에 관해서도 알려진바 없으나 북경(北京)에서 활동하던 중국인 목회자들로 보인다.
서양인 선교사 가운데 2명이 이사로 참여하였는데 연대신과장(燕大神科長) Dr. Hobert 씨와 Dr. Wider 목사가 협력하였다. 교회재정은 북경(北京) 거주 서양선교사가 대양 500원, 중국교회가 50원, 한인 교우들이 270원, 장감연합선교회가 일화 300원을 담당하여 충당하였다.
북경한인교회(北京敎會)는 7인 이사부를 두어 세 나라 사람이 힘을 합하여 참여하면서 전도사로 김광천(金光泉-일명 김근하) 씨가 수고하게 되었고 교회위원(敎會委員) 5명을 두었다.
1924년 1월에 교회위원(敎會委員)은 노원찬(盧元贊), 류기석(柳基石), 강기봉(康基鳳), 조 영(趙 英), 이태로(李泰櫓)씨 였으며 권찰(勸察)로 박도라(朴萄羅)씨가 섬기었다.
1924년 1월 당시에 북경조선교회(北京朝鮮敎會)로 명명되었던 북경한인교회는 북경 조양문(朝陽門) 대가(大街)에 위치하였으며 청년회도 있고 학교(學校)도 있었다.

 청년회 조직과 활동 그리고 학교(學校)에 관하여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 없어 그 내용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나 청년회는 북경고려청년회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1925년 당시 중국(中國) 북경(北京) 고려기독청년회는 조양문(朝陽門) 대가로(大街路) 남(南) 314호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한인(韓人) 유학생들에게 입학수속과 기타 사정을 잘 안내해 주면서 많은 편리를 제공하였다.
북경고려기독청년회(北京高麗基督靑年會)는 북경한인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는데 1924년 2월 임원개선에서 회장에 심 천(沈 川), 총무 조 영(趙 英), 서기 이태로(李泰櫓) ,덕육 강기봉(康基鳳), 지육 이훈철(李勳哲), 체육 이병우(李秉祐), 회계 이종국(李鍾國) 씨가 선출되었다.
북경고려청년회 총무 조 영(趙 英), 덕육 강기봉(康基鳳), 서기 이태로(李泰櫓) 등은 북경한인교회 위원이면서 북경고려청년회(北京高麗靑年會) 임원이기도 하였다. 북경고려청년회는 북경(北京)으로 유학 오는 사람이 미리 연락하면 정거장까지 가서 마중하여 안내하는 등 한인동포들을 도우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24년 초에 북경(北京) 유학생들은 평민대학 제1교실에 모여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 사건 당시 재일(在日) 한인(조선인)들이 일인(日人)들에게 학살당한 소식을 보고받고 비분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북경한인교회가 설립된 사실을 주목한 일제(日帝)의 중국임시대리공사(支那臨時代理公使) 일본인 태전위길(太田爲吉)은 1924년 07월 01일, 문서번호 기밀(機密) 제315호, “北京 朝鮮人 基督敎會에 관한 건(件)” 제목으로 일본 외무대신(外務大臣) 幣原喜重郞에게 “北京鮮人基督敎會 董事會 조직” 사건을 보고하였다.
 일제(日帝)의 해외 거주 외교관들은 당시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韓人)들의 동태를 관찰하여 보고하였는데 “北京鮮人基督敎會 董事會 조직” 사건을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 가운데 중국 각지에 거주하는 조선인 부(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 잡건으로 보고하였다.
일제(日帝)에게 있어서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모두 요주의(要注意) 인물로 관찰대상이었다.
1924년 12월25일 성탄절에 이르러 북경의 한인교회는 축하식을 거행하여 일반교우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순서를 진행하였고 여흥과 다과회로 성탄의 기쁨을 나누기도 하였다.
“북경 조양문대가 한인기독교회에서는 지난 二十五일에 성탄축하식이 있었는데 일반교우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식의 순서를 진행한 후 여흥과 다과회가 있었다더라”

◆북경한인교회 담임교역자 김근하(金根河, 일명 金光泉)초빙
북경한인교회는 자체 예배당이 없었기 때문에 예배 장소를 세를 주고 얻어 회집하였으며 교역자를 청빙하게 된다.
북경한인교회 교역자로 청빙된 김근하(金根河-일명 김광천) 전도사는 중국 남경(南京)에 거주하며 공부하던 사람이다. 그는 1921년 봄에 상해한인교회(上海韓人敎會) 목사 지도하에 있던 중국(中國) 남경한인교회(南京韓人敎會)에서 최지화(崔志化), 김하원(金河源)과 같이 집사(執事)로 선출되어 남경(南京) 거주 한인 신도 30여 명과 같이 활동하였다.
김근하(金根河) 전도사는 남경한인교회(南京韓人敎會) 집사로 시무하면서 남경 금릉신학교(金陵神學校)에서 공부하였는데 1923년 6월에 김하원, 최지화 그리고 금릉대학(金陵大學) 졸업생 박형룡과 같이 졸업하였다.
김근하 전도사는 황해도 봉산군 출생으로 황주 낙영중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다. 평양신학교에서 2년간 수업 후 다년간 교육과 교무에 종사하다가 뜻을 세우고 중국(中國)에 유학하여 금릉신학에 입학, 1923년 졸업하게 되었는데 졸업 당시 37세의 중년 교역자였다.
 김근하 전도사는 중국 남경(南京)한인교회에서 최지하, 김하원, 박형룡 등과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졸업하면서 북경(北京)한인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였다.
 박형룡(朴亨龍)은 평안북도 벽동군 출생으로 졸업 당시 27세 청년이었으며 선천 신성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다.
신성학교 졸업 후에는 평양 숭실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25세에 중국 남경 금릉대학에서 공부를 하여 졸업하게 되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김근하의 동문 김하원(金河源)은 원적이 강계(江界)이며 숭실중학 출신으로 33세에 금릉신학에 입학하여 1923년에 졸업하였다.
김근하의 동문 최지화(崔志化)는 평양 출생으로 숭실중학과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남경 금릉신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후에는 고국에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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