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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김교철 목사의 중국 한인교회 이야기(4)
작성일[2010/10/26 16:36:55]    

중국 북경 한인교회 이야기(4)
김교철 목사(ICM 국제유학생선교회 상임대표)

◆북경(北京)한인교회의 정치와 행정

북경한인교회는 설립 초기에 어느 한 교파에 소속된 교회로 출발한 것이 아니고 교파를 초월하여 연합하는 형태로 시작된 교회였다.
교회 정치에 있어서 감리회나 장로회대로 하지 아니하고 신령한 일에 대하여는 전도사가 주관하고 다른 일은 전도사와 사무원이 같이 처리토록 하였다.
설립 초기에 사무원은 5명이었으며 한인(韓人)이 2명, 서양(西洋) 선교사 2명, 중국 목사 1명으로 구성되었다.
1924년 9월 보고에 의하면 당시 북경교회(北京敎會)에 출석, 회집하는 교인은 50여 명이며 교회가 잘 발전되고 있다고 하였다. 교회재정은 이미 언급한대로 어려운 경제 형편에도 불구하고 유학생들이 교회 재정의 큰 몫을 담당하였으며 북경(北京) 주재 서양 선교사와 중국인 목사, 장감연합선교회가 재정을 지원하여 연합적으로 운영하였다.
 
◆북경한인교회 3처에 회집

북경한인교회는 연합적 성격을 띤 교회로 출발하였으며 국제적인 이사회를 가진 교회였으나 미자립 상태에 있던 교회였다.
북경고려청년회를 모체로 하여 1923년부터 교회설립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여 회집하다가 1924년 5월에 이르러 창립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북경한인교회는 큰 도시에 위치한 교회로 교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1925년 1월 당시에 북경한인교회는 3처에 분산하여 회집하고 있었다.
세 곳에서 모이는 교인은 도합 84명으로 성안교회에 30명, 북경(北京) 서편 태전교회에 25명, 북경(北京) 동편 통주교회에 23명이었다. 그 가운데 남자 세례인은 28명이었고 여자 세례인은 16명, 아이 세례자는 남녀 10명이었다.
북경한인교회는 세례 받은 교인 가운데 투표로 5인을 선거하여 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부인 권찰 1명을 두어 교회 일을 잘 처리하도록 하였다.
당시 북경한인교회 위원장은 김근하(일명 김광천)였고 위원은 로원찬, 이태로, 강기봉, 류기석, 조 영 등 5명이었으며 권찰은 박도라 씨였다.

 ◆북경한인교회 창립1주년 기념식 거행(1925年 5月31日)

북경한인교회는 장감연합회와 북경협화교회의 도움으로 창립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여 교인이 증가하는 가운데 1925년 5월31일에 창립1주년 기념식(記念式)을 거행하였다.
창립1주년 기념식에는 조선인 교우들과 중국인, 서양인들까지 여러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북경한인교회의 발전을 축하하며 다함께 기뻐하였다.
김근하(광천) 전도사는 북경한인교회 목회자로 수고하였으나 1925년 후반기 이후부터는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어서 사정을 파악하기 곤란하다.
김근하(光泉) 전도사는 1925년 겨울에도 북경에서 시무하였으며 그의 부친은 1925년 11월 황해도 사리원에서 별세하였다.

◆1926年 이후의 북경한인교회

북경한인교회(北京韓人敎會)는 1925년 5월에 교회창립 1주년 기념식을 거행하는 등 발전적인 분위기 속에 운영되었다. 그러나 1926년부터 1935년에 이르는 기간은 문서로 남긴 기록이 거의 없어서 교회사정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북경한인교회를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던 장감연합선교회는 1925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1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북경(北京)과 일본(日本)의 전도비로 2,700원을 청원하였다.
장감연합선교회의 전도비 청원 건은 총회 전도부로 보냈으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아니하다.
 다만 총회 전도부는 장래 경영으로 중국 북경(北京)과 남경(南京), 상해(上海) 전도 사업을 착수할 계획이라고만 보고하였다.
당시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전도부가 북경(北京) 전도계획을 분명히 하였기 때문에 이 소식은 북경한인교회에 기쁜 소식이 되었다.
1925년 장로회 총회 이후 10월 23일 경성(京城) 예수교서회에서 열린 조선장감 연합회 공의회는 “長監聯合傳道局”을 조직하였고 이전(以前)에 미션연합전도부(聯合傳道部)에서 경영하던 일본(日本) 동경(東京), 신호(神戶) 그리고 중국 북경(北京) 전도사업(傳道事業)을 인계하였다.
1925년 장감연합전도국(長監聯合傳道局) 국장은 차상진(車相晉)이었고 서기(書記) 겸 회계(會計)는 곽안련(郭安連) 선교사였다.
장감연합전도국은 일본 동경(東京) 전도비로 매년 2천3백원, 일본 관서지방 전도비로 2천원을 책정하여 지출하였으나 북경(北京) 전도비로는 3백원을 책정하여 지원하였다.
장감연합전도국은 1920년대 초반 수 만 명의 조선 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대부분 의지할 곳 없는 가운데 압제 당하는 형편에 처하였기에 일본 내(內) 한인(韓人) 전도를 위하여 더욱 힘을 쓰려고 했다.
이미 언급한대로 중국 북경(北京)에도 상당수의 한인(韓人)들이 유학생 신분으로 건너가 있었다.
북경 거주 한인(韓人) 전도사업은 북경고려청년회의 활동과 참여 그리고 북경거주 서양 선교사, 중국 목사, 장감연합전도국의 참여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나 재정적 기반이 약하여 본국 장로회 총회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1926년 9월에 북경한인교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 전도목사를 파송해 달라는 청원을 하였다. 이때는 “북경한인기독교회”라는 교회 이름으로 전도목사 1명을 보내달라고 청원하였다.
북경한인교회는 1926년 9월 당시에도 유지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나 전도목사 파송을 요청할 정도로 여러 곤란한 형편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경제적인 자립기반이 취약한 유학생 중심의 북경한인교회는 지속적인 운영 기반이 마련되도록 총회에 전도목사 파송 청원을 하였으나 부결되고 말았다.
북경한인교회의 청원에 대하여 장로회 총회 전도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들어 허락하지 못한다고 보고하였다.
총회에서 전도목사를 파송할 경우에는 전도목사에 대한 예산을 세워 집행해야 했으므로 재정이 부족한 총회에서는 북경한인교회까지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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