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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나의 나됨(1)/ 방지일 목사 회고록
작성일[2010/10/26 17:11:40]    

  방지일목사의 회고록 나의 나됨 (1)
나의 생애 - 나의 태어남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
1911년 평북 선천출신으로서 올해 한국 나이 100세를 맞은 방지일 목사는 평양숭실대학과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했다. 예장통합 총회파송 최초 중국선교사로서 21년 동안 일했으며 1958년부터 1979년까지는 영등포교회에서 시무했다. 신일학원, 경기노회장, 장로회 신학대학강사, 총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재단이사장, 기독공보사 이사장, 대한성서공회 재단이사장을 역임한 방지일 목사는 현재 영등포교회 원로목사, 재한 중화기독교유지재단 이사장, 한국외항 선교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무려 104권의 저서를 출판한 방 목사는 어딜 가나 노트북과 함께 하며, 50년 넘게 매주 월요일이면 20~50명의 목사들이 방 목사의 자택에 모여 성경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방지일 목사의 삶과 신앙이 한 시대의 역사를 보여주고 이 시대의 스승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빈농으로 그 당시에는 보통 10대에 가정을 이루는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30대에 가정을 이루셨다. 이러한 만혼은 곧 가난한 정형을 말함이다.
商祚 나의 증조부님의 맏아들이시다. 5형제중의 맏아들이신데 이런 분이 30대에 가정을 이루셨다 함은 그 형편을 알만하다 하겠다. 내 조부님 萬俊 할아버지께서는 내 아버지 孝元을 이렇게 늦게 보셨다. 그리고 그 아래로 5남 1녀를 키우셨다. 이런 가정에 나의 아버지 25세 때 내가 태어났으니, 할아버지께서 회갑 때 사진을 보니 내가 아주 어렸다. 내 조부모님은 더 말할 것 없고, 내 이전 가문 6남매를 다 길러 가정을 이루어 분가시키신 때에 맏손자로 내가 태어났으니 집안의 첫 애기였다. 물론 나보다 다섯살 위의 누님이 한 분 계시나, 나는 손자라서 온 가정이 들뜬 중에 자라났다.
그러나 나는 생모의 얼굴도 알지 못한다. 내가 태어난 후 곧 세상을 떠나셔서 조부모님이 나를 키우셨다. 나는 할머님의 빈 젖을 빨며 자랐다. 나를 밤(栗)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서 먹여 살리신지라 내가 다 크도록 먹은 밤은 아마 몇 독이나 될 것이다.
할머님은 아주 영근 밤을 굽알밤이라고 하는데 다 익어 떨어지는 밤만을 골라서 독에 저장해 놓으시고 내게만 먹이신 것을 철들어 알게 됐다.
우리 집에는 일년 내내 밤이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내 나이 다섯 살 때에 아버지께서는 중국 선교사로 가셨고, 나는 조부모님과 같이 있게 되었다. 내 부모님은 누이 순길이를 낳고 세 식구가 중국으로 가셨다. 내 아버지는 십남매를 키우셨는데 순길이 아래 내 동생들은 다 중국에서 태어났다.

◆조부모님의 슬하에서
나의 할아버님은 아브라함 같으신 분이시다. 그는 양교(洋敎)가 들어오자 자신이 친히 장관선이라는 그 당시 조사(助師)-그 분은 초대로 믿고 조사가 되셨다- 에게 가서 이 새 교(敎)에 대해 묻고는(하나님께서 택하신지라)믿기로 작정하고 20리 거리인 철산읍교회에 나가시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溫陽 方씨들이 살던 곳은 철산읍 여한면 원세평동이란 곳에 半田 半畓의 논 밭이 골고루 있는 촌락으로 그리 부자도 없고 그리 못사는 사람도 없으나 살기에는 좋은 동리로 평가하는 지방이었다. 그 곳은 우리 방씨만 250여호 사는 자성일촌(自性一村)의 지방이라 그 사상 면에서는 고루하기 그지없고 보수사상이 깊은지라 내 조부모님의 기독교 신앙입문에 거족적인 반대가 있었다. 교회에 갔다 오는 길목에 숨어 있다가 습격을 하는 것은 빈번하게 있는 일이었다. 내 가친은 그 당시 어린사람이었으나 자신의 아버지에게 행패 부리는 집안어른들에게 항의하여 부자가 가세하여 믿게 되었다.
그러자 족친들은 양교를 부자가 믿는다고 더 박해를 해 오는 형편이었는데 그 때에 마침 부친상을 당하여 교회례로 장례를 치르고 나니 제사 지내지 않으려는 배반자라고 아예 그 지방에서 축출을 당하게 되었다.
결국 한 30리 밖의 연수동 이라는 곳으로 추방을 당하였다. 그 촌은 여러 성씨가 모여 사는 촌이라 타성들도 들어 와 살기는 하나 속칭 예수쟁이여서 축출당해 왔다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소작농을 해야 하는데 예수쟁이는 일하기가 싫어서 주일에는 일하지 않는다고 여기고는 어느 누구도 조부님에게 농토를 제공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 집에 구걸하는 양으로 다니며 통터를 주기만하면 소출을 많이 내어 드리겠다고 청하나 응하는 이가 없었는데 한 사람이 비소하는 양으로 어느 산 아래 아직 개간하지 않은 돌짝이 가득한 불모지를 개간하려면 해보라고 하여서 시작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기어이 그 땅을 옥토로 만들었다. 퇴비를 많이 주고 작농하게되니 다른 농토에 비기지 않게 산물이 많이 난지라 그 반을 지주에게 돌리니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다 놀라서 방예수는 그 믿는 신이 복을 주셨다고 소문을 냈다.
드디어 이 동네에서의 박해가 그치고 제가끔 논 밭을 맡겨주면서 농사하라는 이가 많아지게 되었다. 차차 자연스레 믿는 일이 보장 되고 전도가 되기도 하고, 교회까지 세우시게 되었다.
조부모님의 그 부지런하심은 내가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 수하에서 자라나며 친히 보고 자랐다. 우리 집에서는 의례 새벽에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예수를 믿으신 후에는 새벽기도회는 절대 빠지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저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지 모른다. 할머님은 베 짜는 일, 무명 짜는 일을 열심히 하셨다. 여름에는 마를 심어 삼베옷을 만드시고 아주 가는 베실로 좋은 제품들을 만들어 내셨다. 내 조모님께서 짠 천을 이어본다면 몇 만 마일이 될는지 모른다. 그 길이를 이루 헤아릴 수는 없음이다. 조모님은 이 집의 맏며느리로 들어 오셔서 시동생 넷을 장가보내 분가 시켰다. 그리고 당신의 자녀 6남매를 기르셨다. 그 수많은 가족의 옷만도 얼마나 될까. 이것을 다 손수 짜서 입히셨다.
내가 장가를 들 때에도 손수 짜 주신 것이 혼수감이었다. 내 조모님께서 짜신 무명 한 필이 지금껏 내게 남아 있다. 이제는 다 삭아서 옷이야 못 만들겠으나 기념으로 내 손자에게 전해주려 한다. 조모님께서는 이렇게 근면하신지라 온 가족의 옷을 댈 뿐아니라 손수 짠 천이 영농에 큰 힘이 되었다.
소작농으로 하던 논밭은 차차 자작농으로 바뀌게 되고 여유가 생긴 것은 조부님 내외간이 밤낮 없이 일하시여 농사도 으뜸되게 짓고, 조모님께서 짠 천을 팔아서 농토를 장만하신 때문이다. 결국은 다 자영농을 할 수 없기까지 되어 지주가 되니 이 일이 그 동리뿐 아니라 다른 동리에까지 퍼져 한 좋은 신앙의 본이 되셨다. (계속)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한 예로, 조부모님께서 계시던 연수에서 철산읍의 교회당까지는 상당한 거리인지라 집안 식구들이 다 삼일기도회에 가고 할머님만 남아있는데 지게를 진 강도 둘이 들었단다. 할머니께서는 천을 짜서 장롱 안에 그득하게 채워 두었었는데 이것은 곧 장에 내다 팔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알고 강도가 들어와서 할머님을 묶어놓고 지게로 두 짐이나 되는 천을 몽땅 털어갔다.

그 밤에 가족들이 돌아와서 할머님이 묶인채로 울고 계신 것을 발견하고서여 풀어 드리고 예배를 드렸단다. 항시 아침저녁에 가정예배를 빼지 않고 드리셨는데 할아버지께서 그 날도 기도하시면서 저 강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니 할머니께서 서운하시어 예배 후에 '그들을 저주 할 터인데 축복기도를 하세요?' 했다는 이야기를 후에 들었다. 그 일은 물론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는데 전에 연수에서 내 조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사서 살았던 정학선 장로라는 분을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분을 통하여 그밖에도 내 조부님에 관한 신앙생활의 여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예수쟁이의 집이라고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박해하여 불을 지르려고 불소슴으로 가느다란 풀들을 모아 굴뚝 곁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초가집인지라 불을 붙이기가 얼마나 쉬운 집이건만 몇 번을 시도했으나 불이 붙지 아니하였고 마지막에 불을 놓다가 그만 순경에게 잡혔다 한다. 그 잡힌 이들이 취조를 받으며 하는 말이 참 이상하게도 그 집에다 몇 번이나 불을 놓으려고 했었는데 불이 붙지 않았다며 그 장소에 가서 보여주었고 온 동리 사람들도 불소슴이 수북하게 타다가 만 것을 와서 보았다는 이야기도 정장로에게서 들었다.

내 조부님께서는 이 동리에 교회당을 세우셨고, 학교도 세우시고, 교장이 되시기도 하셨다. 그 후에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선천읍으로 이사를 하시어 내 가친이 선천 신성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주학졸업이 오늘의 대학원 박사학위에 비기지 못할 전도로 더 귀한 것이었기에 졸업 할 때에 졸업생 8명이 다 말을 타고 작은 읍이지만 시가 행진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큰 행사였다. 내 조부님께서는 선견지명이 계셨다함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선천에 오셔서도 힘이 되는대로 영농을 하시는 것을 내가 철 들 때까지 친히 보았다.
조부님께서는 참외 밭을 하셨는데 가장 좋은 참외로 사과 참외라 운하셨다. 크기는 작은 참외일지라도 꿀같이 달기에 이름이 크게 났다. 얼마나 잘 팔렸는지 모른다. 그 참외밭에는 삼촌들도 못들어가게 하시고 손수 머물며 밭을 관리하셨다. 그런데 참외를 따는 시일이 그리 길지는 않은 몇 주일이긴 했지만 할아버지는 예배 6일(토요일)이면 주일을 지키시기 위하여 집으로 들어오신다. 다른 때는 얼씬도 못하던 삼촌들이 주일이면 자기들 세상이라 친구들과 같이 들어가서 엉망을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예배 1일(월요일)에 할아버지께서 밭에 나가 보시면 한심하고 그 손해는 말할 것 없으나 손해에 아랑곳 않으시고 끝까지 성수주일 하셨다. 나는 그 품에서 중학을 졸업할 때까지 자란고로 이런 일은 내가 다 지내 본 사실이다. 그 분의 성수주일은 내게 깊이 남았다.
조부님께서 70세 가까이 되셨을 때에 내 가친이 중국에 모시고 가셨는데 말을 모르시면서도 거기서도 전도지를 가지고 매일매일 열심히 나가 전도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본국에 돌아 소셔서도 내내 전도를 하셨다. 

 

<ⓒ무단수정.변조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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