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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나의 나됨(2)/ 방지일 목사 회고록
작성일[2010/10/26 17:13:36]    

 방지일목사의 회고록 나의 나됨 (2)

나의 생애 - 나의 가족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한 예로, 조부모님께서 계시던 연수에서 철산읍의 교회당까지는 상당한 거리인지라 집안 식구들이 다 삼일기도회에 가고 할머님만 남아있는데 지게를 진 강도 둘이 들었단다. 할머니께서는 천을 짜서 장롱 안에 그득하게 채워 두었었는데 이것은 곧 장에 내다 팔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알고 강도가 들어와서 할머님을 묶어놓고 지게로 두 짐이나 되는 천을 몽땅 털어갔다.
그 밤에 가족들이 돌아와서 할머님이 묶인채로 울고 계신 것을 발견하고서야 풀어 드리고 예배를 드렸단다. 항시 아침저녁에 가정예배를 빼지 않고 드리셨는데 할아버지께서 그 날도 기도하시면서 저 강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니 할머니께서 서운하시어 예배 후에 '그들을 저주 할 터인데 축복기도를 하세요?' 했다는 이야기를 후에 들었다. 그 일은 물론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는데 전에 연수에서 내 조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사서 살았던 정학선 장로라는 분을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분을 통하여 그밖에도 내 조부님에 관한 신앙생활의 여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예수쟁이의 집이라고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박해하여 불을 지르려고 불소슴으로 가느다란 풀들을 모아 굴뚝 곁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초가집인지라 불을 붙이기가 얼마나 쉬운 집이건만 몇 번을 시도했으나 불이 붙지 아니하였고 마지막에 불을 놓다가 그만 순경에게 잡혔다 한다. 그 잡힌 이들이 취조를 받으며 하는 말이 참 이상하게도 그 집에다 몇 번이나 불을 놓으려고 했었는데 불이 붙지 않았다며 그 장소에 가서 보여주었고 온 동리 사람들도 불소슴이 수북하게 타다가 만 것을 와서 보았다는 이야기도 정 장로에게서 들었다.
내 조부님께서는 이 동리에 교회당을 세우셨고, 학교도 세우시고, 교장이 되시기도 하셨다. 그 후에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선천읍으로 이사를 하시어 내 가친이 선천 신성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주학졸업이 오늘의 대학원 박사학위에 비기지 못할 정도로 더 귀한 것이었기에 졸업 할 때에 졸업생 8명이 다 말을 타고 작은 읍이지만 시가 행진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큰 행사였다. 내 조부님께서는 선견지명이 계셨다함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선천에 오셔서도 힘이 되는대로 영농을 하시는 것을 내가 철들 때까지 친히 보았다.
조부님께서는 참외 밭을 하셨는데 가장 좋은 참외로 사과 참외라 운하였다.
 누구를 만나든지 그저 붙잡고 전도를 하셨는데 얼마나 총명하신지 성경의 이야기들을 조목조목 들려주며 전도를 하셨다. 이스라엘 남북 두 나라 왕들의 이야기, 동양사의 이야기 등은 나도 너무 많이 들은 바요, 요 순 우 탕 문 무주공의 선정, 걸과 주의 악정들을 예를 들어 전도에 이용하심이다. 다윗왕의 이야기도 할아버지께서 전도하실 때에 들은 기억이 난다.
 내 조부님은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신 말씀은 별로 없으시다. 하지만 조부님과 나는 한 이불에서 자곤 했는데 밤에 어쩌다 깨어나서 보면 베개를 이마에 대시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밤새 그렇게 기도하시다가 또 새벽이면 교회로 가신다. 그 말씀 없으신 할아버지의 신앙이 내게 배어들었다 할 것이다.
 어릴 때에 나를 소아 전도회원으로 가입시키시고 회비도 내 주셨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데 이름을 부를 때는 성구를 외우면서 대답하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나는 내 조부의 신앙에 휩싸여 자랐다고 할 것이다. 내게 이런 귀한 할아버지의 배경이 있다함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다. 참으로 귀한 신앙인이셨다. 그리 배우신 것은 많지 않고, 가난하게 사셨지만 그 총명하심이 뉘게 비기지 못한다. 내가 평양에서 공부할 때에 그 당시는 책이 별로 없는 때인데 책이 나와 사서 보내드리면 그 책들을 외우다시피 하신다. 그리고 성경을 많이 보시니 전도를 하실 때 보면 그 성경지식이 놀랍다. 내가 지금 70여 년간 단을 지키는 사람이요 성경강해를 다 썼지만 내 할아버지의 성경 상식과 암송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게 생각이 된다. 또한 조부님은 말씀이 달변이셨다. 그 품에서 자란 나이기에 오늘에 이름이니,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요, 또 내게 아브라함 같은 신앙의 할아버지가 계심이다. 할아버지의 늘그막에 풀이 없으실 때에 선천에 들어가면 그리도 반가워하시고 삼촌들에게서 받으신 용처를 내게 주고 싶어 하셨다. 나를 외딴 데로 데리고 가셔서 지갑에 들어있는 그 당시 일 원짜리 두 장을 내게 꺼내 주시던 그 모습을 상기하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조부님은 또한 철저하게 십일조(十一條) 생활을 하셨다. 농사를 지으실 때 타작을 하고나면 그 시로 10분의 1은 아예 하나님의 것으로 내놓으신다. 할아버님의 한평생 사심을 회고해 보면 몸은 약하시고 가난하신 분으로 배우신 것 없으시나 비범하신 분이심을 알게 된다. 내가 중국에 모시고 간 중에 일본의 침략으로 전란을 겪에 되어서 참으로 죄송하였다. 그래도 간신히 그 전란에서 모셔나와 한국으로 돌아가시게 한 바가 있기도 하다. 나는 한 주일에 꼭 한번은 편지를 드리곤 했다. 내 아이들이 셋 이었을 때였는데 그 증손들의 이야기가 할아버님의 기쁨이었다. 그렇게 늘 기도하여 주시는 할아버지신데 86세를 일기로 떠나심을 들었을 때 내 한 울타리가 무너짐을 느꼈다. 내게는 물론이거니와 내 아이들을 위한 기도의 배경이 거두어졌다는 심정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 셋째 아버지 댁이 구성이었는데 거기서 떠나셨다.  이제 남북이 나뉜 지가 반세기가 넘었으니 내 할아버지의 직계 손 중에 이북에 있는 이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하한 이만 해도 이제 2백 명이 넘는다. 아마도 북에 있는 이도 약 백 명은 넘을 것이다.  곧3백이 넘는 손들이 있는데 그 중에 목사만도 18명이 배출되었다. 내 할아버지께서 받으신 분복(分福)이 이러하다 상기하니 내게 이런 위대하신 할아버지의 배경이 있다함을 기록에 남길만하다.

내 가친
내 아버지는 내 조부모님의 6남매 중의 첫 사람으로 태어나셨는데 6남매 중 가장 준수하고 키도 제일 크시고 인물도 뛰어 나셨다. 할머님의 말씀에 의하면 남이 도적할만한게 탐스러웠다 한다. 지금도 사진으로 보는 대로 역시 준수하게 생기신 분으로 우리 집안에 외모로도 그만한 분이 없다. 아버지는 일찍이 친척들이 예수 믿는 아버지를 핍박하는 것에 반발하여 예수를 믿게 되셨다고 한다. 나는 아버님과 같이 보낸 시일은 극히 적다. 안식년에 본국에 와서 계실 때 잠깐과 내가 평양에서 장대현 교회에 시무할 때 상해교회 건축을 위하여 헌금 모금을 위해 오실 때에 때로 우리 집에 들르시곤 하심이다. 그 후 상해교회에서 일을 보실 때에 가서 집회 한 일이 있기도 하며, 나중에 일경에게 구금이 되어 신의주에 갇혀 계실 때에 내가 신의주에서 얼마간 유하면서 때로 면회를 하였다. 나는 아버지께서 3년형을 언도 받았을 때에 상고를 위하여서 일경(日警)을 만나기도 하고 아버지를 면회 할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내 아버지의 그 원만하신 포용력이나 어른 되심에는 어느 자녀도 따를 사람은 없다고 본다. 당시의 상해교회는 전국적 모임이요, 전국의 인물들이 다 애국자들이요, 주견이 뚜렷한 인물들이 모인 곳이라 교회가 단순할 수가 없으니 임정에 계신 동창들이 방목사가 와야 교회가 된다고 총회에 청원하여 아버지를 외지 선교에서 내지 전도목사로 전임시키신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께서 가계신 어간 화합이 되었고 교회당 건축의 기틀도 마련하신 바이다. 일제 말에는 한국에 오셨다가 구금되어 죄목을 찾는 동안 신의주에서 몇 개월간 심문을 당하셨다.
 그러나 아무리 죄를 찾아도 흠을 잡지 못하였다. 중국에 女子2代에 걸쳐서 가 있으면서 반일, 할 일한 죄를 찾는다고 가택수색을 하며 온갖 것들을 압수당하였는데 일기장도 수 십 년 치를 다 압수당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선교에만 역사 하였던 고로 흠을 잡지 못하였다. 한 번은 내 부친을 취급하는 新見 부장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자 전문 담당인고로 때로 나는 그를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일기 중에 남경에 갔던 일을 큰 사건으로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상해 밖으로 간 일이 없다는 일의 반증을 얻었다고 득의만만하였다. 그래서 내가 이 사실을 아버지께 여쭈니 얼른 생각이 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 일에 당황하시다가 아버지께서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남경에 간 일이 전연 없는데 어떻게 일기장에 썼을까 하지며 바로 전 날의 일기를 보셨는데 여기서 답이 나왔다. 전날에는 상해에 계셨고 그 다음날도 상해의 기록이다. 상해에서 남경이면 천리 길인데 어제도 상해, 다음날도 상해이니 하루는 가고 하루는 돌아와야 되는 길인데 남경을 갔다 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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