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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김교철 목사의 중국 한인교회 이야기(5)
작성일[2010/10/26 17:26:03]    

중국 북경 한인교회 이야기(5)

김교철 목사(ICM 국제유학생선교회 상임대표)

북경(北京)한인교회가 설립되던 시기를 전후하여 북경(北京)은 정치적으로 복잡한 형편에 처해 있었다.
1924년 10월23일, 빙옥상(憑玉祥) 장군은 북경(北京)에 침입하여 북경 정계(北京政界)가 혼란에 빠졌으며 대총통(大總統) 조곤(曹?)이 즉시 도주(逃走)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빙(憑) 장군의 군대는 11월5일 전청선통제(前淸宣統帝)의 어소(御所)인 자금성(紫禁城) 포위(包圍)하고 퇴거(退去)를 협박(脅迫)하여 선통제(宣統帝)는 자동차로 궁성(宮城)을 나와 순친왕저(醇親王邸)로 퇴거(退去) 하였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대변동과 혼란 속에 빠져 있었으며 1927년의 북경(北京)은 인심(人心)이 크게 동요(動搖)하는 상태였다.
1927년 10월25일 북경(北京) 치안당국(治安當局)은 공산주의를 선전하였다는 혐의(嫌疑)로 기독청년회(基督靑年會)와 북경대학(北京大學) 기타 각 학교로부터 검거(檢擧)된 학생 가운데 14명을 총살(銃殺)하였으며 1927년 당시 북경(北京)의 사립대학(私立大學)은 전쟁(戰爭)의 영향(影響)으로 입학희망자(入學希望者)가 감소하여 경영에 궁(窮)하게 되었다. 또한 관헌(官憲)의 간섭(干涉)이 많아 일본(日本) 유학희망자(留學希望者)가 속출(續出)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7년에는 중국 동란으로 인하여 중국선교사 약 200명 정도가 조선(朝鮮)으로 피난(避亂)하기도 하였다.
중국 동란과 사상적 투쟁, 불안정한 사회상황은 북경(北京)한인교회와도 직결된 문제였기에 1928년의 북경한인교회 활동 역시 침체기로 접어들게 된 것으로 보인다. 1928년에 남경파(南京派)는 협의한 결과 국민정부(國民政府)의 소재지를 남경(南京)으로 하고 북경(北京)은 빙옥상(憑玉祥)장군에게 위임(委任)키로 하였다. 1929년에 이르러 북평정부(北平政府)는 외국기독교회(外國基督敎會)에서 소유(所有)한 토지건물(土地建物)에 대하여 지세가옥세(地稅家屋稅)를 과(課)하기로 하고 각 교회 신고(名敎會申告)를 명(命)하였다.
이상과 같이 정치, 사회적 환경이 불안하던 시기에 처한 북경(北京)한인교회의 형편은 기록이 전무하여 잘 알 수 없으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 시기의 북경한인교회의 교인들 형편과 담임교역자의 동태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다행히 1930년 8월13일 저녁부터 중국 봉천(奉天) 서탑예배당에서 북경(北京)의 김광천 목사를 청빙하여 백영엽, 김창덕 목사의 인도로 사경회를 열었다는 소식이 남아 있어 1930년 당시에도 김근하(광천) 씨는 북경(北京)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미 목사안수를 받고 활동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남경(南京)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당시에 선배였던 백영엽 목사와 김근하(광천)는 서로 교류하고 있었으며 서탑교회에서 같이 사경회를 인도하였다.
김근하가 언제, 어느 노회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30년에도 북경(北京)에 거주한 것으로 보아 북경한인교회는 미약하나 그나마 유지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확실한 근거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의산노회 파송 홍승한(洪承漢) 목사

북경(北京)한인교회 부임과 활동(1936年8월-1937年)
북경한인교회는 초교파적으로 출발한 교회였으나 1930년대 중반부터는 장로교회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1936년에 이르러 조선예수교장로회 의산(義山)노회는 홍승한(洪承漢) 목사를 중국 북평(北平=北京)에 파송하여 한인들을 위해 전도하도록 하였다.
당시 북평(北平) 즉 북경(北京)지역 한인사역은 봉천노회(奉天老會)가 관활하던 지역인지라 봉천노회의 허락을 득(得)해야만 하였다.
의산노회의 청원이 있기 전인 1936년 2월에 제2회 봉천노회가 만주(滿洲) 무순예배당에서 회집되었는데 제2회 노회 시에 북평(北平) 등지의 교회조직 청원이 상정되어 봉천노회 전도부에 위임된바 있었다.
1936년 8월에 열린 의산노회는 북평(北平) 지방으로 홍승한 목사를 파송할 청원 건을 봉천노회에 제출하였으며 1936년 8월, 만주 봉천(奉天-심양) 서탑예배당에서 개최된 제3회 봉천노회에서 허락을 받게 된다.
당시 봉천노회 회장은 김창덕 목사였고 부회장(副會長)은 전재선 목사, 서기(書記)는 최혁주 였다. 봉천노회(奉天老會)의 허락을 받게 된 홍승한(洪承漢) 목사는 북평(北平)으로 떠나게 되었다.
홍승한 목사는 1881년 출생하여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된 후 평안북도(平北) 영동교회에서 장로장립을 받았다. 그는 평북 철산지역의 몇몇 교회 조사로 활동하였으며 평양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911년 목사장립을 받았으며 대구교회(현 대구제일교회)목사로 부임하여 1917년까지 목회하였다.
1917년 총회 중국 산동(山東)선교사로 선택된 그는 당시 대구와 경북지방의 중심교회의 위임목사 직분을 내려놓고 대구(大邱)교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선교사로 헌신하여 산동성(山東省)으로 파송되었다.
그는 산동성(山東省) 래양(萊陽)과 즉묵(卽墨)에서 개척선교를 위해 힘썼으나 선교비 부족 문제로 총회가 소환 결정을 하여 1924년 귀국하였다.
홍승한(洪承漢) 목사는 귀국하여 선천 남(南)교회 목사로 시무하다가 1927년 선천 남교회를 사면하였고 철산읍교회 임시목사로 그리고 1928년 1월 철산읍교회 위임목사로 허락을 받았다.
그는 1933년에 철산읍교회를 사면하였으며 신의주에 거주하면서 저술활동을 하였다. 홍승한 목사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북경(北京) 전도에 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북경전도 적임자로 인정되어 파견되었다.
 50대 중반이었던 홍승한 목사는 체마, 중앙, 의산노회 전도부 합동경영으로 지원을 받아 북평(北平)에 도착하여 전도활동에 착수하였다.
홍승한 목사는 북경시(北京市) 미시대가(米市大街)에 위치하였던 중화기독교(中華基督敎) 청년회관(靑年會館) 100호실을 빌려서 1년간 회집하였다. 홍승한 목사는 1937년까지 중국 북경(北京)에서 활동하고 귀국하였다.
그의 활동 시기의 북경교회는 소수의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8년에 기록된 “북경교회 소식”에 “과거 6-7년간을 몇몇 사람이 모여 중화기독교 청년회관(中華基督敎靑年會館)을 빌려 보면서 내려왔는데 교역자는 감리교 목사도 좀 있었고 장로교 목사도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장로교 목사는 1936년 후반기부터 1937년까지 시무한 홍승한 목사가 확실하지만 감리교 목사는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없다.
홍승한 목사가 북경(北京)에서 일하다가 사임한 1937년 여름에 일제(日帝)는 전면적인 중국 침략 전쟁을 시작하였다.
일제(日帝)는 1937년 7월, 노구교(蘆溝橋)사건을 계기로 전면적인 중국 침공을 시작하였고 이후 8년간 중일전쟁이 지속되었다. 중일전쟁 발발로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중국 북경은 일본군에 함락되었으며 북중국 일대 역시 일본 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홍승한 목사는 귀국의 길을 택하였으며 귀국 후 1938년에 신의주 제오(第五)교회 임시 담임 목사로 청빙되어 시무하였다. 당시 침략전쟁에 광분한 일제(日帝)는 종교보국을 내세워 강압적인 종교통제와 전시 동원체제 구축, 일왕(日王)의 지배하에 신동아건설 실현을 목표로 사상통일과 신사참배를 강력 실시하였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의산노회에 소속된 홍승한(洪承漢) 목사는 1940년 2월21일 결성된 국민정신총동원(國民精神總動員) 조선예수교장로회 의산노회(義山老會) 지맹(支盟)에 평의원(評議員) 한사람으로 명단에 포함되었다.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의산노회 지맹 이사장은 계효언(桂孝彦), 이사 윤하영(尹河英) , 金泰周, 金致恒으로 구성되었으며 의산노회 지맹 결성식에는 회원 91명과 방청원(傍聽員) 등 500여 명이 참석하였다. 궁성요배(宮城遙拜.계효언-桂孝彦)와 황군(日本軍) 장병을 위한 묵도, 일본국가 봉창, 황국신민서사(李永泰 指導), 성서낭독(홍하순-洪河順), 규약(金冠桂), 래빈축사 등으로 진행되었으며 한경직 목사가 축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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