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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전태규 목사의 베트남 선교지 방문기(상)
작성일[2010/10/26 17:29:59]    

 전태규 목사의 베트남 선교지 방문기 ( 상) 

“만일간의 전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하소서!”

◆베트남을 이해하려면 먼저 전쟁의 역사를 이해하라
만일간의 베트남 전쟁은, 그들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보다 오늘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지를 가르쳐주었다. 베트남 곳곳에서 가정 제단을 차려놓고 향불을 지피고 촛불을 켜놓은 것을 종종 보았다. 오늘 죽으면 끝나고 마는 인생, 내일이 보장되지 않은 그들에게 종교란 어떤 의미일까?  베트남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그들의 상처와 전쟁의 혈흔들을 보듬어야 한다. 낮에는 월남군 밤에는 월맹군,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은 오랜 전쟁기간 동안 사람에 대한 불신과 끈질긴 인내를 만들어 왔다. 지금도 그들은 한 가지 목적을 세우면 아주 끈질기게 기다리고 탐색하며 의논한 후 행동을 결정한다. 더구나 조상대대로 깊게 뿌리박힌 유교적 관습과 불교사상의 터 위에 선교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더디겠는가?

◆베트남의 정신적 지주,  호치민
“베트남 국민의 가슴에 독립과 해방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치민의 막강한 영향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관공서에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처럼, 우리가 방문했던 몇몇 곳의 사무실에는 빨간 깃발과 함께 호치민의 초상화가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베트남 화폐에 사람의 인물사진이 들어간 것은 호치민뿐이라고 하니 그의 영향력이 가히 짐작이 간다.
호치민은 통일되기 전 1968년에 사망하였다. 그는 살아생전 오직 국가만을 생각하며 헌신하였다고 한다. 호치민은 죽기 전에 두 가지 유언을 하였다. 자신이 죽은 뒤에 절대 무덤이나 동상을 만들지 말고 화장하여 뿌려달라고 당부하였으나 공안당국과 세력자들이 이를 어기고 그의 유해를 냉동 보관하여 지금도 선전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결국 전쟁은 우리가 이긴다. 그러니 남베트남 사람들에게 가혹하게 하지마라” 고 당부하였는데, 실제로 이 유언은 지켜져 정치적 보복이 없었다고 한다. 평생 사유재산을 한 푼도 소유하지 않았고, 늘 검소한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며, 일식 3찬 이상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등 개인의 영달을 포기하고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투쟁하여 온 국민의 귀감이 되어 사후에도 베트남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베트남의 선교 상황
베트남에는 세 종류의 교회가 존재한다.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정교회와, 숨어서 예배를 드리는 지하교회, 그리고 교회의 규모를 갖추지 못하고 옮겨 다니며 예배를 드리는 처소교회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 될 당시 베트남에는 750여개의 교회와 60만 이상의 기독교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안당국의 철저한 종교 탄압으로 교회의 지도자들과 젊은이들은 모두 축출되어 ‘사상 개조 교육 학교’로 보내졌고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5년까지 구금되었으니 지도자가 없는 교회와 교인들은 자연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특히 시골교회는 예배 인도자가 없어서  400개 이상의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고, 사상개조 교육을 받은 목회자들은 다시 목회에 복귀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교회 내에도 ‘배급경제’논리가 적용되어 교인들이 헌금을 하면 공안당국에서 모두 가져가고 일정 금액을 떼어 목사님의 월급을 주고 있으니 자연 교인들이 헌금을 하지 않게 되었다.
“목사님이 설교준비는 어떻게 하는가?” 물어보니 공안당국에서 설교 본문을 1줄 내려 보내면 목사님이 그 본문으로 설교 준비를 해서 다시 공안당국의 심의를 받고 통과된 말씀으로 공안의 입회 감시 하에 설교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은 15년 전보다 훨씬 좋아진 거지요. 1986년에 처음 베트남에 선교 왔을 때만해도 기도회를 한다는 것은 곧 생명을 걸고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 때는 새벽 4시에 산속에 모여서 주일 예배를 드린 적도 있습니다.” 17년째 베트남 선교를 위하여 헌신하시는 선교사님의 말씀이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그래서 거주이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지금도 15호 감시제가 있어서 주민들의 동태가 공안당국에 모두 보고되고 있지요.” (계속)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통반장제도가 있어서 낮선 사람이 마을에 나타나면 바로 보고가 들어가고, 특히 외국인이나 수상쩍은 사람이 공안의 허가 없이 현지인들과 접촉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한다고 한다. 특히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어서 친척이 모여 외식을 하거나, 심지어 친정어머니가 딸네 집에 가서 자고 오려 해도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다 집회의 자유가 없으니 교인들이 기도회를 하려면 감시망을 피해 12시~2시 사이 낮잠 자는 시간을 이용하여 몰래 모여서 기도회를 하고, 목회자들이 교인들 심방을 하려면 절대 30분 이상을 그 집에 머물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현장에서만 잡히지 않으면 조서를 받지 않아도 되므로 감시자들의 밀고가 들어가고, 공안이 현장에 뜨는 시간을 감안하여, 잽싸게 치고 빠지는 선교전략이라고 한다.
일단 15명 이상의 무리가 모이면 발각의 우려가 있으므로 다시 두 개의 모임으로 나누어 예배를 드리다 보니 건강한 영적 세포분열이 일어나 몰래 예배를 드리는 지하교회가 놀라운 속도로 부흥되고 있다.
관광이나 비즈니스는 아주 자유롭고 권장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왜 유독 기독교의 선교를 막고 있는가 묻자, 공산당은 본래 종교를 아편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이며, 특히 어떤 종교가 되었든 자신들의 사상과 이념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그 어떤 행위도 사전에 철저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트남 종교정책은 외국인이 내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는 것이 발각되면 즉시 추방당할 정도로 배타적이다. 물론 헌법상에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지만 카톨릭과 개신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선교사가 들어오면 침략이 뒤따른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는 과거에 프랑스가 그러한 전례를 남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트남의 카톨릭의 역사는 이미 오래되어 각 지방과 도시마다 교회부지가 확보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우리 개신교는 도심지에 부지확보를 하지 못하여 건물을 임대하여 운영되고 있다. 호치민 한인교회도 임대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베트남 사람에 의한 베트남 선교가 최선책이라고 하니 베트남 내에 신학교를 설립하는 길이 모색되어야 하겠다.

◆휴맨기술학교와 김영관선교사님
감리교의 베트남 선교 역사를 거론하려면 먼저 휴맨기술학교를 손꼽아야 할 것이다.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우리 한국군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 2세를 라이따이한이라 부른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라이따이한들을 돕기 위하여 감리교단에서 호치민(구 사이공)시에 휴맨기술학교를 세웠다.
감리교 전국 부흥단 일원은 이번 선교지를 방문하기 앞서 먼저 휴맨기술학교를 찾아 설립자인 김영관 선교사를 방문하였다.
 “지난 일 년 간 감리교 목사님이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넉 아웃된 선교사를 도우라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주셨군요!” 라며 반색을 하는 김영관선교사는 이미 국내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로, 베트남 공안당국에서 그의 공로와 업적을 인정하여 스스로 그의 사업을 도와주는 유일한 공인선교사이다.
이 학교는 정식으로 인가된 고등기술학교로 라이따이한 한국인 2세에게 자립할 터전을 마련해주려 여러 가지 기능과 기술을 가르쳐왔는데, 이제 라이따이한이 모두 30~40대가 되어 더 이상 학생이 없자, 지금은 순수한 베트남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김영관 선교사는 더 이상 우리가 한국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한국인 전문 인력을 도와 그들이 자립하여 스스로 선교활동을 하도록 돕고 있다고 한다.(계속)

◆정부 ‘종교성 허가’를 받은 베트남 현지인 교회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때, 베트남 현지인 교회에서는 50여명의 교인들이 뜨거운 찬양과 기도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주로 젊은 청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베트남의 미래에 대한 주님의 소망을 보는 듯했다.
“신앙의 자유를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박해를 통해 성장해왔습니다. 베트남 교인들이 박해 가운데서 더 열심을 가지고 견고한 믿음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부탁을 한다.
우리 국내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중의 30% 이상이 공안의 끄나풀이라며, 구체적인 장소나 실명, 자세한 상황도 밝히지 말아달라는 선교사님의 부탁에 이유를 묻자 베트남에는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선교나 포교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신분이 노출되면 신변이 위태롭기 때문이란다.
실제 선교사님도 3개월간 옥고를 치르셨다고 하니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선교는 우리가 막연한 짐작으로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순교의 각오가 있어야만 가능한 사역이다.
“이 분은 돈으로 선교하지 않고 마음으로 선교하신 분입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돈을 주고 허세를 부리던 이들은 많이 있었지만 선교사님처럼 우리에게 마음을 주신 분은 없었습니다.” 베트남 목사님은 선교사님에 대해 극구 칭찬과 절대적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 교회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우리의 헌금으로 성전을 건축 중에 있습니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베트남 목사님은 남다른 신앙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형님은 베트남이 공산화되기 전에 5천 여 명의 성도가 모이는 큰 교회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공안당국에게 제일 먼저 타켓이 되어 미국의 간첩이라는 명목으로 숙청되었다고 한다. 이 때 미국 측과 암묵적으로 거래가 되어 다행히 생명은 구해 지금 미국에 망명하여 살고 있는데 그 동생인 목사님이 지금 이렇게 목회를 잘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복된 가문이 아닌가!

한베아동을 위한 한국어학원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을 약칭 ‘한베아동’이라고 하는데, 이 아이들의 대부분이 한국어를 모른다고 한다. 한베아동을 위한 한국어학원(실명삼가) 원장님은 주말한글교실을 시작하여 베트남 어머니들과 한베아동들에게 한국어와 컴퓨터사용법 한국요리 등을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 교우 중에 베트남 출신 자매가 있어요.”라고 한 목사님이 말하자, 우리 어학원 출신 학생이 한국어로 된 베트남요리, 베트남어로 된 한국요리책을 출간했다고 자랑하며 이 요리책을 그 자매에게 사다주라고 적극 권장한다.
“이들에게 우선될 교육은 한국 문화와 한국어, 한국영화, 요리 등을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싸매주고 신뢰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 어학원이 배출한 수가 벌써 사천 여 명, 이곳 출신 중에는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회사에서 통역으로 근무하는 이도 있고, 한국여행객들을 위하여 호텔 로비나 상점 등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그중에 실력이 탁월한 한 학생은 경희대에 장학생으로 진학하기도 했고, 감신대에 진학하여 신학을 하고 있는 이도 있다고 한다. 어학원 원장의 비전은 한베유치원을 설립하는 것이라고,

베트남의 경제와 문화
호치민 사람들은 오토바이에서 태어나 오토바이 위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치민 시내는 거리를 가득채운 오토바이의 행렬과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으로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베트남 여성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타는 것을 싫어하여 얼굴 전체를 복면으로 가리고 오토바이를 탄다고 한다. 오토바이가 생활화 된 베트남 사람들, 그들 중에는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던지, 100cc 오토바이를 타고 1000Km를 달려와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이 있다고 하니 현지 지하교회 성도들의 열심히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진에서처럼 아름다운 아오자이를 입고 농이라는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이 눈에 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아오자이는 아오(옷) 자이(길다) 즉 ‘긴 옷’이란 뜻이고, 머리에 쓰는 ‘농’(農)이라는 모자는 16개의 나이테로 되어있는데 여기에는 16살 때까지는 실컷 놀고 16살이 되면 모자를 쓰고 나가 네 밥벌이를 하라는 교훈이 담겨있단다.
호치민 시내를 돌아보면서 일행들이 하나같이 궁금하다며 질문을 한다.
“왜 건물의 앞면이 저렇게 짓다만 것처럼 좁지요?”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베트남의 모든 부동산은 공안당국에 의하여 제한 배급되어서 도로와 연결된 건물 앞면이 4m정도 뒤로 12m 정도로 제한된 것이며, 또 한 가지 설은 베트남은 창문의 개수로 세금을 내기 때문에 창문의 숫자를 줄이고 짓는 것이라니, 행복의 원천이 되는 가정이 사상과 이념에 의해 제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지어낸 유토피아라는 게, 하나님이 주신 천상의 낙원과 얼마나 동떨어진 억지인가!

베트남 선교, 어떻게 도울 것인가?
미국과 전쟁 때 미군이 교회는 피하여 공격하는 것을 이용하여 베트공들이 의도적으로 교회 지하에 숨어들거나 교회종탑에 올라가 포를 쏘아대는 통에 미군이 할 수없이 교회를 폭격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아픈 상처를 딛고 베트남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뿌리를 내리며 세포분열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기약도 없이 선교비 지원이 끊어져 곤란을 당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의 사연을 듣고, 마음이 퍽 무거웠다. 사력을 다해 싸우는 선교지에서 선교비는 총알과 같은 것인데, 사지(死地)에 선교사를 파송해 놓고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도중에 나 몰라라 해서야 되겠는가! 너무나 말라서 애처롭기만 하던 선교사님의 단호한 의지와 당부말씀이 귓전을 울린다.
“목사님! 이곳에는 약 2만 여개의 지하교회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새벽시간 깊은 산중에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방언과 통변으로, 신유와 예언으로, 각양 은사와 기적들을 체험하면서 이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찬양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를 각오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수백 킬로 먼 길을 털털대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틀 삼일씩 달려와 말씀을 듣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열망이 있는 한 베트남 선교는 소망이 있습니다. 여러분, 저들이 사상과 이념과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견고한 신앙으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주십시오.”
감리교 전국 부흥단 실무진이 베트남 선교지를 돌아보고 부흥성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선교에 대한 막중한 사명감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누군가는 보내는 선교사로, 누군가는 파송된 선교사로, 우리는 모두 세상 끝 날까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할 막중한 사명자요 동역자들이 아니던가!


 

<ⓒ무단수정.변조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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