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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중앙성결교회 김재송 목사 일선 목회 마무리
작성일[2010/10/27 11:31:25]    
오직 한 길 하나님 중심, 교회제일주의로 달려온 43년

지난 43년 앞만 보고 달려온 김재송 목사(시흥중앙교회)의 가장 큰 감사는 목사로 살아온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투철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목회를 시작했고, 크고 화려한 꿈보다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정진해 왔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교회와 맡겨주신 양무리, 한 영혼 구원이 그가 43년간 달려온 길이었다. 급한 성품은 옆도 뒤도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 앞만 보기에도 너무 바빴고 최선을 다한 삶은 일선 목회에서의 은퇴를 기쁨과 감사로 맞이하게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좋은 장로님과 좋은 교우들을 만나게 해주셨고, 함께 동역해준 아내, 스스로 잘 자라준 자식들……. 모두 감사하고, 앞으로 전 성도들이 더욱 전도에 매진해서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바램이죠.”
김재송 목사의 목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도다.

함께해서 감당할 수 있었던 목회사역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충남 서천 도둔이 고향인 김재송 목사는 이곳에서 성장기를 보낸다. 그가 신앙인이 된 것은 17세 때로, 동네에 있던 천막교회를 섬기면서 신앙생활에 매진하는 가운데 은혜를 받게 되었다. 사모함이 컸던 그는 용문산기도원으로 산 기도를 다니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고 전도에 열심을 내었는데, 동네사람들이 예수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그에게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는 군 제대 후 신학생이 되게 했고, 이후 40년을 오직 한 길 하나님 중심, 교회제일주의로 달려오게 했다.
무엇보다 그가 감사한 것은 목사로 부르시면서 함께 동역할 헌신적인 사모를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결혼 전부터 훌륭한 사모 감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았던 이복환 사모가 많은 고민과 갈등 끝에 고생길이 훤한 목사 사모의 길을 선택한 것은 기도로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모의 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했다. 남편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따리 장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였고, 고되기로 유명한 김 채취를 하다가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기도 했었다.
단독 목회를 시작할 때는 더 어렵고 힘들었다. 신학교 4학년 때 영당성결교회로 부임한 김재송 목사(당시 전도사)는 죽기를 각오하고 사역에 임해, 총회의 선교비도 끊었다. 그 덕에 이복환 사모의 고생은 더욱 컸다. 산에서 나무를 해야 했고, 먹을 양식이 없으면 금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기고 순응하여 굶기를 밥 먹듯했다. 농번기에는 성도들이 나오질 않아 아기를 등에 업고 성도들을 데리러 다니기도 했다. 김재송 목사가 실망해서 목회를 그만둔다고 할까봐 염려했던 탓이다.
죽기를 각오한 목회사역은 부임 2년 만에 교회를 재건축 할 수 있게 되었고, 5~6명이던 신자는 30~40여명으로 성장했다.
두 번째로 부임한 교회 역시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임교역자와 성도들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 터라 후임자가 선뜻 나서지 않아 가게 된 곳이 덕천교회다. 전체 신도 60~70여 명이었으나 교회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성도들의 신앙 열정이 식어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김 목사는 이를 회복시키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 전도, 매일 성경 읽기, 새벽제단 쌓기 등 성도의 5대 의무를 가르치고 신앙적인 교육에 전념했다. 이러한 노력은 부임 2주 만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고, 성령의 불이 붙자 교회를 재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1973년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서울 구로동의 중생교회로 부임했다. 전체신도 20여명, 30여 평 낡은 예배당에, 사택은 천장의 구멍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을 만큼 허름한 곳이었다. 극심한 가난가운데서도 오직 예수만 바라보자며 교우들과 기도했고, 김 목사는 늘 강단에 엎드려 눈물로 엎드렸다. 이복환 사모는 이곳에서 넷째아이를 출산하고 아이와 함께 실신하기도 했다. 산모가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가 12월 난방시설이 전혀 안된 곳에서 태어나 거의 사망 직전 상태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3시간 만에 주님의 은혜로 극적소생을 한다. 그 아기를 업고 이복환 사모는 골목골목 심방을 다녔다.
김재송 목사는 처음부터 사모와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목회를 시작했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 결과가 교회의 부흥으로 열매를 맺었고, 시흥중앙교회에서 만개되었다.  
“저 혼자였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내조자를 주님이 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기도 많이 하는 신앙인이었고, 신유의 은사까지 받아 개척당시에는 아내의 영향력이 더욱 컸습니다.”
미안하고 감사할 뿐이라고 심정을 전한 김재송 목사는 ‘기도하는 사모 영력 있는 사모가 되기 위해 늘 노력했고,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정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뒷바라지를 하면서, 일체 목회에 간섭하는 법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김재송 목사지만, 아내요 동역자로 40년을 넘게 함께 해온 이복환 사모를 향한 감사의 마음은 흘러넘친다. 
 
전도는 은사가 아니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전도 밖에 없다고 강조해온 김재송 목사, 성경 전체가 전도이며, 성경의 결론은 전도라고 말하는 김 목사는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고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쳐왔다. 전도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한 영혼 사랑에서 시작된 그는 마태복음 4장 23절 말씀을 토대로 목회를 해왔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교회 개척 당시에는 이복환 사모와 함께 한 조가 되어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기 위해 씨를 뿌렸고, 하나님은 분명히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는 것을 그때 경험하면서 전도는 하면 되고 전도해야 교회가 산다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자연 김 목사의 모든 설교는 전도 설교가 되었다. 교우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전도에 대해 들었고, 천하 보다 귀한 영혼 구원의 의무를 인식하면서 이에 순종하게 된다. 
‘말주변도 없고, 잘난데도 별로 없다’고 스스로를 평하는 김재송 목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은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기쁘게 여기신 것 같다면서, “하나님의 소원은 영혼구원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것을 전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으셨다”고 말한다.
시흥중앙교회가 부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성도들의 전도활동에 결정적인 힘이 된 것이 기도운동이었다.
교회 건축으로 어려움이 극도에 달했던 1980년에 특별기도회를 통해 기적의 역사를 체험한 바 있는 동교회는 이 특별 새벽기도회를 1년에 두 차례 매년 이어 오면서 전도에 막대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봄에는 부활절을 기점으로 3주전에 시작하고 있으며, 1부 4시 30분, 2부 5시 30분부터 진행되고, 전도에 집중적인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일주일쯤 기도를 하고나서 둘째 주가 되면 전도특공대가 오전 10시에 가동된다. 이 시간 담임목사가 함께 기도하면서 대원들을 훈련시켜 현장으로 보낸다. 그리고 연이어 부흥성회가 열려 교우들은 영적으로 충만함을 얻게 된다. 10월이 되면 동일한 방법으로 특별새벽기도회가 진행된다. 이 기도가 진행될 때 전도의 비율이 1년 중 가장 높고 정착율도 이 시기에 매우 크다.
또한 전도훈련학교를 통해 전문성을 키웠다. 전도훈련학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실시되는데, 오전 시간에는 성경공부를 하고 오후 시간에는 직접 거리전도에 나서게 된다. 1986년 3월 3일부터는 전도를 위한 철야 기도회가 시작되어 매일 밤 릴레이로 20일간 이어지기도 했다.
시흥중앙교회가 현재 재적 성도 2천 5백여 명에 성년 성도 1천 2백여 명에 이르는 것은 모두 열성적인 전도의 결실로 맺어진 결과다.
놀라운 것은 시흥중앙교회가 소재한 금천구는 서울의 25개 중 가장 자립도가 낮은 곳이다. 80년 예배당을 지은 후 두 번째로 98년도에 대지 560평, 연건평 1500평의 규모로 교회를 건축했는데, 가난한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IMF까지 만나 어려움이 가중됐다. 그러나 십시일반이라고 전 교우들이 힘을 모으고, 지속적인 전도활동으로 성장하면서 50억 가까이 되는 공사를 너끈히 감당해낼 수 있었다.
시흥중앙교회의 기도운동과 전도운동의 결과는 1986년부터 1996년까지 11년간 4009명이 전도 되었다. 가장 많이 전도된 해는 1989년으로 600명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다.
1994년에는 27개의 교회를 물질로 후원할 수 있었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중국, 러시아, 남미, 파라과이 등의 해외 지원에도 나섰다.
해외선교는 김재송 목사가 캐나다 목회학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1985년에 필요성을 절감하며, 1986년부터 해외선교 지원을 시작했다.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로 점차 지경이 넓어져 러시아, 남미 파라과이 등 해외 선교에 눈을 돌려 기도하며 후원할 때, 하나님은 더 큰 부흥으로 역사하셨다. 

 

예성교단의 진정한 화합의 시대 열어
교단 분열로 한때 목사 파직까지 받았던 김재송 목사는 2003년 제82회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총회장에 선출되어 예성의 진정한 화합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자신을 목사 파직으로 내 몰았던 사람들까지 감싸 안아 줄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했던 그는 1년의 총회장 임기를 통해 화합을 위한 노력에 집중했다. 그 일환으로 증경총회장단 모임을 활성화 시켰고, 수년 동안 쟁점으로 있었던 여성 목사안수 문제를 전격 통과시킴으로 교단 이탈 직전의 예성 여성 목회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갖게 했다. 이로 인해 임기 내내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이듬해 기성이 여성 목사 안수를 통과 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행정구역 조정을 단행하였다. 지엽적인 문제와 마찰도 있었지만 대의적 차원에서 교단의 미래를 생각하는 각 교회 목회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미주총회와 오세아니아 지방회 등의 설립으로 해외에서 예성 선교사들의 상호 협력과 교류 및 국내와의 미흡한 연결 체재의 어려움들을 해소시켰으며, 교단지인 성결신문을 발행하여 명실 공히 한국의 10대 교단 안에 드는 예성의 위상을 세웠다. 또한 형제교단인 기성과의 우애를 돈독히 하며 교류를 강화시켰고, 특히 대외적으로 예성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한 김재송 목사는 한기총을 비롯하여 각 교단 총회장 단 모임과 교시협의회 등의 활동을 통해 예성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1년의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100주년을 넘어 새로운 100년을 향해가는 예성의 새 출발에 기초 돌을 든든히 세웠던 것이다.

창립 50주년 시흥중앙교회의 더 부흥하는 내일을 기대하며……. 
“이제는 주님 품으로 잘 가는 일이 남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충성하다가 은혜스러운 모습으로 가고 싶죠. 목사님들이 흔히 마지막은 강단에서 마치고 싶다고들 하는데 제가 막상 당해 보니 그다지 은혜스럽지가 못해요. 신도들이 당황스러워 우왕좌왕하고 교회가 발칵 뒤집힐 큰 사건이 되고 보니 신도들에게 누가 됩니다.”
2년 전 강단에서 헌금기도후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었던 김 목사는 당시 마지막 가는 수순을 거의 다 밟았었다고 한다. 주님이 아직 시키실 일이 남아서인지 두 번이나 죽음의 길에서 회복시켜 주셨는데, 한번은 당진수양관을 가다가 과로로 인해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이로인해 김 목사가 타고 다니던 승용차는 폐차되었고, 그는 뇌졸중에 언어장애까지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주기도문까지 잊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10월 10일 오후 2시 교회 창립 50주년과 김성은 담임목사 위임 및 원로목사추대와 임직식을 마지막 행사로 일선 목회를 마무리 짓는 김재송 목사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 맞이하는 행사이기에 더욱 감회가 새롭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은 목회였기에 그는 지금 아쉬움이나 미련보다는 감사와 행복함이 더 크다. 그것은 특히 자신 보다 더 나은 후임자가 신도들과 함께 시흥중앙교회의 보다 나은 내일을 열어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무단수정.변조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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