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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김교철 목사의 북경한인교회(6)
작성일[2010/11/18 17:22:31]    

 김교철 목사의 북경한인교회(6) 
북경(北京)한인교회
제직회장 전재선 목사(1938年)
 

김교철 목사  

- ICM 국제유학생선교회 상임대표 -

홍승한(洪承漢) 목사가 시무하던 시기의 북경(北京)교회 교세를 알 수는 없으나 1938년 1월에 조선(朝鮮)예수교장로회 봉천(奉天)노회 전재선 목사가 제직회장으로 피선된 것으로 보아 제직회가 구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당시 중국 천진(天津)과 북경(北京)은 조선예수교장로회 봉천(奉天)노회의 관할지역으로 홍승한 목사의 귀국 이후에는 전재선 목사가 북경교회의 제직회장으로 피임되었다. 전재선 목사는 1938년 1월에 북경교회를 방문하여 하룻밤 특별집회를 인도하면서 과거에는 손님으로 왔으나 지금부터는 제직회장 이름을 가지고 왔다고 선언하였으며 예배를 마친 후에 제직회로 모이게 하였다.
북경교회 제직들은 제직회장인 전재선 목사에게 교역자를 인선하여 보내달라고 요청하였고 그렇게 하기로 하였으나 교역자 인선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아니하였다. 북경(北京)은 국제도시라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웠으며 당시 북지(北地) 사변으로 모두가 위험지대라고 안가겠다고 하여 3-4개월간 교역자를 인선하지 못하고 지나게 되었다.
전재선 목사는 1938년 2월16일 오후 2시에 만주(滿洲) 봉천 서탑(西塔)예배당에서 회집된 만주희년전도회(滿洲禧年傳道會) 총회에서 총무로 선출되었다.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만주(滿洲)희년전도회의 신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장 정상인 목사
서기 김대업 목사
회계 전평수
총무 전재선 목사
이사 김창덕, 정상인, 리혜철, 김대업, 최성주, 오근목,
전평수, 김선두, 박기호, 윤정희

만주(滿洲)희년전도회는 총무 전재선 목사에게 봉급(12개월, 720원)과 주택비, 여비를 지급하였다.
전재선 목사는 만주(滿洲)희년전도회 총무이자 제10회 봉천노회에서는 부회장으로 피선되는 등 만주지방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활동하고 있었다.
전재선 목사가 북경(北京)한인교회 제직회장을 맡고 있던 기간에 북경교회는 교역자 문제로 마침내 분립하기에 이른다.

북경한인교회(北京韓人敎會) 분립(1938年 6月)
북경교회는 홍승한 목사가 귀국하면서 목회자 자리가 비게 되자 적임 교역자 초빙문제를 제직회장 전재선 목사에게 부탁하였으나 구하지 못하고 3-4개월이 흐르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북경교회를 위하여 수고한 교역자는 중국 천진(天津)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던 김은석 전도사였다.
김은석 전도사는 한 달에 두 번 북경교회를 방문하여 교회를 돌보았으며 백은희 권사와 함께 심방하여 숨은 교인을 찾은 결과 불과 몇 사람 모이던 교회가 120-130명 교인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김은석 전도사는 천진(天津)한인교회 담임교역자로 활동하면서 북경교회를 위하여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수고를 하였다.
김은석 전도사가 담임하던 천진교회는 1938년 후반기에 김진수(金珍洙) 목사를 청빙하였다.
천진(天津)교회 김은석 전도사가 북경교회를 돕던 시기에 관한 기록이 없어서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는 아니하나 감리교 장죽섭 목사를 청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북경교회를 돕던 김은석 전도사는 제직회장 전재선 목사에게 편지를 보내어 신경(新京)에 있는 장죽섭 목사를 청(請)하여 시무케 한다고 보고하였다.
그러자 전재선 목사는 김은석 전도사에게 책망하는 편지를 발송하였고 북경교회 제직들에게는 권면하는 편지를 보내어 제직회장도 모르게 타 교파 목사를 청할 수는 없다고 말하였다.
북경교회 제직회장 전재선 목사는 봉천(奉天)노회 소속 몇몇 목사들 그리고 노회장과 의논한 후에 1938년 6월 초 북경(北京)으로 가서 제직들을 소집하였다.
북경교회 재직들은 재래대로 교파를 초월하여 “조선기독교(朝鮮基督敎)”로 하겠다고 주장하였으나 전재선 목사는 북경(北京)이 봉천(奉天)노회 관할이며 제직회장도 모르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등 문제를 제기하자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제직 모임 후에 전재선 목사는 장죽섭 목사를 만나서 의견을 듣게 된다.
장죽섭 목사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목사 일 보러 온 것이 아니고 내 아들 장사하는데 따라 왔다가 이곳에서 남아 목사 일 보라고 하니 허락한 것이므로 이제라도 장로교 일꾼이 오면 물러 안겠다”는 내용으로 답을 하였다.
전재선 목사와 장죽섭 목사는 1938년 6월5일 주일에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장죽섭 목사가 사회를 보고 전재선 목사가 설교 하였으며 전재선 목사의 북경 방문 기회를 이용하여 6월7일부터 부흥회를 하기로 광고하였다.
그리고 전재선 목사는 1938년 6월6일에 어떤 집사 댁에 모여서 장죽섭 목사는 다른 교역자가 오면 자신은 슬그머니 물러나겠다고 하니 어떠하냐고 묻자 남녀제직 3명은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이 북경(北京)은 사방에서 모이는 곳이므로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초월한 교회를 하겠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전재선 목사는 우리 장로파는 따로 갈라야 되겠다고 선언을 하고 우리교회가 언제든지 합해야지 불과 백여 명 밖에 안 되는 교인이 갈라지면 외국사람 보기도 부끄럽다 당신들이 깊이 생각하라고 말한 후 헤어지게 되었다.
전재선 목사는 따로 집을 얻어서 부흥회를 개최하였는데 결국 6월12일에 장죽섭 목사 편에 선 제직들이 우린 장죽섭 목사를 보낼 수가 없다고 하여 부득이 교회가 분립되는 것을 선언하고 교인들은 자유대로 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1938년 6월12일, 북경교회는 결국 장로교와 감리교로 분리되고 말았다. 분리된 후에 장죽섭 목사가 시무하던 북경감리교회의 형편은 잘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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