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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나의나됨(4)/ 방지일 목사
작성일[2011/01/11 17:39:05]    

방지일목사의 회고록 나의 나됨 (4)
나의 생애 - 나의 가족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
1911년 평북 선천출신으로서 올해 한국 나이 100세를 맞은 방지일 목사는 지금까지 무려 104권의 저서를 출판했고, 어딜 가나 노트북과 함께 하며, 50년 넘게 매주 월요일이면 20~50명의 목사들이 방 목사의 자택에 모여 성경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방지일 목사의 삶과 신앙이 한 시대의 역사를 보여주고 이 시대의 스승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내 아버님은 덕이 후하시다. 뉘와 담을 쌓지 않으신다. 급하게 일하시지 않으시고 대기만성의 전형적 표본이시라 할 것이다. 그의 한국 목회 시작지는 철산 영동교회였는데 거기에는 쟁쟁한 장로님들이 여러분 계셨고 후에도 목사, 장로의 인물이 많이 배출된 교회였다. 유명한 김성수장로는 그 옛날에 그 딸 영애를 고등교육 시키신 장로로 그 사위가 홍하순목사이며, 그 손자가 지금 뱅쿠버에 계신 홍성득목사님이시다. 안성모장로는 대단한 분이셨다. 그리고 김익순 장로님은 대한 화재의 사장이시며, 한국 재벌의 한 사람이신 김치복장로, 서울대 사범대학장과 숭실대 학장이던 김치선박사의 아버지가 다 그 영동교회의 장로이시다. 최득의 목사, 최성호목사의 숙질못가도 다 그 교회출신들이다. 이런 교회에서 시무를 하신 바, 그 인재들이 다 내 아버지의 덕후한 배후의 인재들이셨다.
 나의 아버지는 중국 선교의 일, 상해 교회의 일을 다 성공적으로 감당하셨고, 후일에 상해교회의 원로로 추대 받으시고 일제 시대 때에 북으로의 강제 소개로 회국 하셨다가 공산당에게 숙청당한 상태로 계셨다. 나는 이런 소식들을 선교사로서 중공에 있으면서 미국을 통하여 몇 달 만에 한 번씩 듣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아버지께서 부산 천막 피난시절에 특병하시여 별세하신 소식을 몇 달 후에야 들었다.
내 부친은 중국선교 행각 중에 지방을 순회하면서 겨울에도 곳간 같은데서 밤에 노숙하며 방한용으로 개털 가죽을 덮고 주무셨다. 날씨가 얼마나 찬지 아침에 일어나니 입김이 눈과 같이 서려있더란다. 그 때에 와사증, 말하자면 중풍증세가 나타나고 입이 돌아가서 밥도 제대로 입에 들어가지 않으며 말씀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오래치료를 했으나 완전하게 회복되시지는 못하시어 한평생 괴롭게 지내셨다. 식사하실 때에나 말씀할 때에는 우선 한참동안 얼굴 한쪽을 많이 비벼대시고 나서야 말씀도, 식사도 하실 수 있었다. 이렇게 괴로운 몸을 지니시고 어머님과 두 누이와 북에서 지내셨는데 국군이 북진하였을 때에 평양에 들어오셨던 김윤찬 목사님이 보시고는 자기의 남하하는 길에 아버님을 지프차에 납치하듯 태우시고 남하 하셨으니 가족에게는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났고 그렇게 가족이 사방에 흩어진지라 돌아가실 때까지 마음 편하실 수는 없으셨다.
 나는 중국에 있으면서 이런 가정의 불운한 일들을 미국을 통하여 간접으로 들었는데 들리는 말에 내 동생 파일목사가 살해를 당하였다는 소식까지 전해왔다. 복음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내 신상의 일이 무겁다. 어렵다 하며 감상적으로 매달릴 수는 없지만 내동생의 살해 소식이 들리니 캄캄할 뿐이다. 그 즈음 이대영 목사님은 한국이 독립하였을 때에 자기 가족은 임지에 둔 채 단신으로 본국으로 돌아오셨기 때문에 나는 이 목사님의 가족들과 같이 공산치하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본국에 계신 이 목사님에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를 물었더니 몇 달 후 도착한 회신에 ‘위로 받으세요’하는 말로 시작하여 동생의 비보 후 20일 사이에 아버지도 가셨다는 보도를 접하였다. 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깊이 아픈 마음으로 우리 중국교회 목사님들과 교인들과 같이 아버지의 추모예배를 드렸다.
이제 본국에 내 동생들로서 누이 셋과 남동생 셋이 있고 또 동생 화일목사의 아이들 넷이 있는 줄 아는데 저들이 어찌될까 매우 암담하였다. 이북에 계신 어머님은 살아계셔야 할 텐데 하면서 어떻게든 소식을 통화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하나 길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 끝에 동창인 이영태 목사 그가 평양에 있는 줄은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소식 전할 길을 찾아보았다. 황해도에 있는 아는 이의 주소를 알아 간접으로 그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영태 목사는 나의 이런 어려운 상황을 알아 줄 이인고로 내 어머니를 좀 찾아 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띄어본 것이다. 이 못가님도 지혜로운 분이시라 회담을 하면서 나만이 알 수 있게 다 익명으로 소식을 보내왔다.
어머님도 개명으로 박영도라는 이름이시다. 몇 달 만에 서로 소식을 받게 되었다. 우선 북에는 결핵약이 없어 그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소포를 보낼 수 있어서 그 약을 사 보내곤 하였다.  어머니께서는 남쪽의 가족소식을 물어 오시는 데 차마 이러한 부자의 비보를 전해 드릴 수는 없는 고로 아이들은 다 잘 있다는 소식을 드리니 어찌 파일이의 소식이 없는가 물으시기에 오랜 시일이 걸리는 고로 자세한 소식은 나중에 알아서 전해드린다고 미루며 다른 소식만 알려드렸다. 그러다가 북에 있는 내 누이동생 선길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랑은 張모모란다. 이 사람이 한번은 자기들은 월남한 사람의 가족이라 배급도 못 타고하니 아버지가 거기 중국에 계시다는 말만 해주면 월남하였다는 것을 벗게 되고 배급도 탈 수 있겠다는 간곡한 호소를 보내 왔기에 하는 수 없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음을 알리고 추모예배를 드리며 사진 찍은 것을 보내드렸다. 이러다가 나는 중국서 추방을 당하여 거기를 떠난 할 때에 아머님께는 그냥 떠난다는 소식만을 남기며 남으로 가는 줄 아시게 했다. 내 동생 화일목사는 기독교협의회 간사로 있으면서 서울이 복귀되어 서울로 올라오려고 우선 서울에 잠시 들렀다가 평택에서 살해를 당한 바이다.
 서울에 출장을 갔는데 여러 날이 되어도 오지 않으니 아버지께서 매우 염려하고 계신 것을 알고 이 대영, 한경직 두 목사가 내 아버님이 와병중이시나 그래도 알려 드려야 한다며 찾아가서 이 말씀을 드리니 벌써 무슨 일이 있음을 짐작하셨다는 말을 후에 내게 전해주셨다.
나는 1957년 9월 22일 부산항에 도착하니 부두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큰 영접을 받았다. 나는 그 때에 부산에서 총회를 하는 줄은 알지 못하고 다만 조국에 돌아와 아버지 산소부터 찾겠다는 마음에 어렵게 어렵게 선편으로 부산에 왔다. 그래서 우선은 총회에 가서 인사드리고 곧장 괴정 공동묘지를 향하였다. 동생 경일이와 같이 묘지로 향하면서 장례하던 날에 눈이 많이 와서 눈길에 장례를 치른 소식이며 아버지는 총회장으로, 동생 파일은 교회협의회장으로 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괴정에 가니 거기는 공동묘지인데 가파른 산이다. 중턱의 묘가 동생 파일의 묘소요, 그 위가 아버님의 묘소란다.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가 예배를 드리면서 몸져누우셨더라도 살아 계실 때에 아버님을 뵈옵고 아이들도 인사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간절할 뿐이었다. 그 후에 서울 올라와서 우리 가족들 또 여러 교우들과 친지를 만났다.

 중국선교의 기틀을 세우시다

 아버님은 중국어가 불통이실 때에 가신지라 통역으로 조사하러 같이 갔던 김병규 전도사를 다시 보내 주시어 편의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셋방으로 있다가 본국에서 전도처와 사택을 분지하게 선교비가 온고로 건물이 있는 대지를 구입하여 예배드릴 처소며 선교사가 유할 방을 준비하게 되었다. 언어가 통하지 못하면서도 피차간의 정다운 관계를 유지함은 보도 상에도 (당시의 기독신보에 수록)여러 번 보도되었다. 특기할만한 일은 그곳의 향반이요 산부인과 명의인 王國- 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양교라면 아주 근본적으로 적시하던 분인데 고려인(한국인을 대접하는 말은 고려인이라 한다. 이는 고려 때에 우리나라의 국세가 가장 강하던 때여서 그렇게 부른 듯하다)을 직접 찾아와서 고려인이 전도하러 왔다함을 듣고 가서 알아보자고 찾아 왔다며 대화를 나누던 끝에 그가 믿기로 작정하였다. 내 가친에게 큰 열매였다. 그는 아주 강직한 분으로 믿은 후에는 아예 의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와 같이 전도에 나섰다. 내가 선교사로 갔을 때에도 전도사로 같이 일할 수 있었다. 그는 딸만 여덞인데 지금도 그 외손자들이 내게 편지도 주고 그 어머니도 내게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 노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나 그 후예들은 신앙을 지킬 뿐 아니라 은연히 전도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 감사할 뿐이었다. 연태 지프라고도 하는 곳은 산동에서 첫 개항 한 곳으로 영국인이 발을 먼저 디딘 곳인데 그 후에(왕궈란)들이 거기서 공장을 경영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거 산동에도 진출하여 뉘게 내 이름을 물었더니 마침 그가 잘 안다하여 내 주소를 알아가지고 내게 편지를 했고 자기 모친도 전도를 하면서 편지를 하였었다. 그간 아무리 오래 공산치하에 살았지만 그 신앙을 잘 지켜온 우리 교인들을 볼 때에 참으로 감사하기 짝이 없음이요 그 감격은 표하기 어렵다. 요즈음에는 직접 전화로 나누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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