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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나의나됨(5)/ 방지일 목사
작성일[2011/02/07 09:38:54]    

방지일목사의 회고록 나의 나됨 (5)
나의 생애 - 나의 어린시절
 

유초등 시절의 나

나는 할머님의 품에서 자랐다. 어려서는 할머니의 빈 젖을 빨며 자랐는데 할머님의 지극한 정성으로 빈 젖으로도 잘 자라나게 하셨다. 주로 내게 밤을 먹여 기르셨는데 할머니께서는 꼭 익어 떨어지는 알밤만을 구하여 독에 넣어 놓고 밤으로 암죽도 해 먹이시고 좀 커서는 구어 먹이기도 하셨다. 아마 몇 독쯤 되는 밤을 먹으면서 자란 것 같다. 한번은 소학교 때인데 봄소풍으로 선천읍에서 한 정거장 되는 江역이라는 곳에 있는 폭포에 간다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오죽이나 기쁘던지 아침에 할머니께서 지어주신 밥을 먹지 않고 새벽같이 역으로 갔다. 봄이긴 하지만 날씨가 차서 아침에는 싸늘한데 홈에서 그 찬바람을 쏘이며 밤 삶은 것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몇 시간동안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차를 타고 불과 15분 거리의 다음 역에 도착하자마자 한 여선생님의 옷에 먹은 것을 다 토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만 인사불성이 되었고 다른 사람을 시켜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아마 그것이 엄청 체했던 모양이다. 그 식체로 인한 병이 깊어서 척하면 소화가 안 되고 체하기 일수라 나 하나 때문에 온 식구가 저녁에 밥을 먹지 못하고 죽을 먹기도 하였다. 혹 밤참으로 겨울에 냉면을 시켜 먹는데 내가 자는 줄 알고 시켰다가 깨어나서 조금이라고 먹게 되면 그 날은 온 집안이 잠도 자지 못한다.
이 병은 나날이 더 악화되어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약도 많이 먹었지만 병세가 나아지지 않고 깊어 졌다. 지금 생각하니 할머님은 민간요법이라 하는 것은 다 해 보신 것 같다. 내게 별 별것을 다 먹이신 것이다. 약수를 먹게 한다고 사람을 보내어 약수를 가져오고 조금이라도 더 마시게 하려고 짠 생선포를 먹이기도 하셨다. 무슨 약인지도 모를 물을 큰 그릇에 가득하게 끓여 놓으시고는 들고 날 때마다 그 물을 마시게도 하셨다. 삼촌들을 시켜 바닷가에 나가서 몇 자루나 되는 굴 껍질을 가져오게 하여 연자에 쌓아 가는 체로 쳐서 그 가루를 몇 자루 먹게도 하셨다. 그래도 효과가 없는지라 내 자신도 그랬고 집에서는 이제는 못 건질 아이로 낙인을 친 듯 하였다. 그래도 학교에는 빠지지 아니한 고로 중학 필업때에는 개근상을 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몸은 약했지만 학교는 절대 빠지지 않으려 했기에 외증조 할머님의 장례에 가면서도 두 시간만 빠져서 결국 개근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허약한 구제불능의 몸이기에 내 스스로도 앞으로의 삶의 의의를 못 가졌던 바인데 중학교  5학년 때에 산기도를 시작하였다. 어두울 때에 선천 수청고개 하면 가물남 가는 길의 한 고개인데 굽이굽이 돌아가는 그 경치가 매우 좋다. 물론 그 고개까지 다 가지는 못하나 늘 그 고개를 향하여 가다가 소나무 아래에 앉아 기도도 하고 날이 밝으면 성경 보는 일을 매일같이 하였다. 적어도 가는 길이 5리쯤 되니 왕복 10리 길이 더 될 것이다. 이렇게 아침마다 좋은 공기를 호흡하며 십 여리씩 걷는 운동이 내 몸에 맞았는지 그 체기가 어느새 다 나았다. 몇 달인지 한 해가 넘었는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별별난 치료를 안 해본 것이 없다 할 것인데 슬그머니 완치가 되고 만 것이다. 나는 그 다음부터 약은 입에 대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기에 예방주사도 맞지 않고 증서만 얻어가지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 이후 오늘까지 식체로 인한 걱정은 없는 편이나 이북에는 감이 없어 못 먹었다가 남쪽에 와서 감을 많이 먹은 것이 좀 체하여 지금도 감은 그리 잘 먹지 않는다. 중국에 있을 때에는 몸무게가 48kg 정도 밖에 안 나갔으나 별로 아프지는 아니 하였다. 지금은 귀국한 이후 52kg~54kg 사이를 유지 할뿐 그 이상 나가지는 않으니 몸이 가볍고 좋아 보인다. 못 살 것이라는 거의 절망의 상태였던 내가 언제 나았는지 모르게 나았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나은 줄도 모르는 사이에 다 나아서 오늘까지 이렇게 지내고 있다.

내 숙부님들의 기대
나는 어려서 총명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서당에 다닐 때에는 글을 외우는 것에 일등이었다. 글을 줄줄 외우는 것이 동리의 한 기쁨이기도 해서 저녁에 마을사람들이 모이면 아무개를 불러서 글 외우는 것을 듣자고 할 정도였다. 그러다 중학에 가서는 수학을 잘한다고 선생님들의 칭찬을 들었다. 대수건 기하이건 늘 만점이었다. 집에 어린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으니만치 집안의 총애를 한 몸에 지니고 자라게 되었다. 내 아버지는 벌써 중국선교사로 가 계셔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수하에서 자랐는데 숙부님들은 나에게 의학을 시킬 예산을 하신 모양이시다. 중학을 마치면 세브란스로 보내기로 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내가 숭실대에 지원한다니 의대에 갈 길도 다 열어 놓으셨는데 그만 낙심이시다. 물론 나로서도 숙부 숙모님들의 기대를 어기는 것은 죄송했지만 벌써 마음에 신학을 하기로 작정한 바라 내 결정대로 숭실대를 택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하여 할아버지의 권고를 받은 바는 없으나 그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결정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바를 이로써도 알만 하였다. 거기에 인간의 뜻이 일호라도 개입하지는 아니한 것이다. 내가 숭실대에 간다고 하여 숙부님들이 상심하셨지만 그렇다고 나를 강요하여 의학에 가라는 말씀은 한 번도 없으셨다. 만반의 준비를 다하시고서도 내가 정한 것에 대하여는 하지 말라는 이가 한분도 없으셨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의심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아무런 잡음도 없이 숭실대로 진학하였고 지금까지도 내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집안 식구 중 누구도 내가 의학을 하지 않아 아쉬워하는 이는 없다.
어릴 때 생명자체를 건지지 못할 것 같다던 몸을 낫게 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기에 누구든 다른 말을 하는 이가 없으니 이것이 벌써 하나님께서 부르심이라 확신하다. 내 할아버지께서는 내 진학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없으셨다. 그저 나를 위하여 기도할 뿐이다. 내 할아버지의 신앙은 절대순종의 신앙이시다. 그리하여 나는 학생시절부터 할아버지의 모습대로 무리하며 살았다 할 것이다. 학교의 수업시간을 마치면 의당 3시간 정도 일을 하고, 밤으로는 야간학교에 가서 가르치고,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런 가운데에도 학교 성적은 중 이상은 했다.
나는 그저 복음역사는 다 배운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주어지는 대로 일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런 관계로 학자는 되지 못하였지만 단을 지킨 시간이 70년이 된다. 학생 때부터 일을 우선으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부지런하게 일하자는 것이 내 삶의 표준이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미국 유학의 길이 다 열렸으나 중국에 가서 일하라는 총회의 요청에 그냥 순응하였다. 나와 같이 유학을 준비했던 절친한 친구 박윤선, 김진홍은 유학길에 올랐고 대 학자가 되었고 나는 거기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오늘까지 일하고 있음을 하나님께 늘 감사드린다. 이렇게 삶에는 그저 감사 할 것뿐이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까지 단을 지키는 일, 글을 쓰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 간혹 이제는 가만히 있을 때라는 말을 듣기도 하나 기운껏 해보자는 마음으로 산다. 내 아이들은 행여 남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때로 한다. 나도 그 점을 생각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씀을 들고 갈 때가 있을 때는 어디든 간다. 나의 나됨에서 이 토막의 이야기도 뺄 수는 없기에 기록해둔다. 내 장점을 살리는 그 방향으로 나갔다면 더 큰 공헌을 했을 것이 아니냐는 말도 듣기도 했지만 나는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기에 이 일이 내게 더 큰 일로 생각되어 이 길을 걸어 왔고 그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저 복음역사는 다 배운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주어지는 대로 일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런 관계로 학자는 되지 못하였지만 단을 지킨 시간이 70년이 된다.
학생 때부터 일을 우선으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부지런하게 일하자는 것이 삶의 표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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