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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을 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 우남 애국상을 수상한 이민복선교사
작성일[2015/11/01 13:33:58]    
 

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을 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

 

필자는 일제 말기 1937 4 29() 1938, 8, 10() 강원도 양구군 남면 청리에서 4 1녀의 막내로 농촌이지

만 농토도 하나 없는 가정에서 나라도 없는 일제말기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모태로부터 애국자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어머니가 5남매를 기르려고 산골짝 시골집을 찾아 다니며 슈퍼마켓(광주리 장사)를 하시며 고생하시던 어린 시절, 나는 왜 아버지가 없을까? 뒤에 알았지만 아버지(류근하씨)는 벌목을 하는 삼판에서 일하다가 병을 얻고 돌아와 병원치료도 받아보지 못하고 나의 생후 8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용하국민학교 2학년에 진학하도록 3 1녀의 가족인줄 알았더니 맏 형님(류병열씨)은 일본으로 징용당해 해방을 맞은 1945 8 15일이 몇 일 지난 후에 건강하게 돌아오셨다.

해방의 기쁨도 의식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기뻐 날뛰는 가운데 덩달아 즐겁게 맞은 해방, 마을 사람들이 소를 잡아 돌려줘서 처음 맛보는 쇠고기를 먹도 남아 부엌에 놔둔 고기에 냉장고도 없던 시절 쉬파리가 실례를 해 구더기가 빼앗아 먹는 것을 털어가며 즐겁게 먹었으니 해방이 이렇게 좋은 줄만 알았다.

 

Ⅰ. 이북에서 공산주의를 피하여 월남하다.

해방이 되어 나라 잃은 설음을 깨달은 지 얼마 안돼서 마냥 즐겁기만 할 줄 알았는데 3.8이북이라 로스케가 들어와 3.8선을 지키며 행패를 부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큰 형님은 서울로, 일본으로 다니시며 현실을 보시는 눈이 열리셔서 서울을 몇 번 다녀오시고 겨울을 지난 봄에 온 가족을 이끌고 3.8선 이남 춘천에 사시는 외가댁으로 월남을 단행하여 로스케가 지킨다는 3.8선 산자락을 숨을 죽이고 돌아 무사히 춘천에 도착했다. 이 사건은 내 일생에 생사를 가누는 대 사건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5남매가 자유의 몸이 되는 행운이었다.

 

Ⅱ. 동족살상의 6.25전쟁 시 4번의 피난으로 살아남았다.

춘성군 서면 신매리에 금산리로 가는 중간 지점에 큰 노송이 있어 나무를 섬기는 서낭고개 마루에 인삼 밭이 있는데 밭을 지키는 가건물에서 자리를 잡았으나 동리에서 동 떨어져 외로운 5남매가 물을 기르러 금산리를 다녀야 하는 누님의 고생, 외가댁 동리에 다니며 콩을 갈아 콩죽과 콩 탕으로 연명하면서 금산국민학교에 형(기열씨) 4학년에 나는 2학년에 복학되어 점심을 굶으며 배우는 가운데서도 성적은 5위를 넘지 않고 열심히 배웠다.

당시 새로 개교하는 춘성공업중학교 5학년생이 월반하여 신북면 천천리 산 밑에 2십 리는 족히 되는 거리를 공업학교 토목과 중학생이 되어 매일 걸어서 통학을 하려니 자연히 걸음이 빨라졌다.

중학교 2년이 되고 이어서 6.25의 전쟁으로 학업이 중단되고 큰 형님과 누님을 제외한 3형제가 피난길에서 서울을 거쳐 장호원, 음성, 청주, 영동, 밀양, 삼랑진까지 걸어 걸어 밀려가서 구 면소 종대 밑에서 가마니로 막을 치고 3형제가 피난을 하고 3개월이 되어 북진하는 국군의 뒤를 따라 군수물자를 싣고 가는 열차 지붕 위에서 가다, 서다 를 반복하며 5일만에 영등포에 도착하여 춘천으로 걸어서 돌아 왔으나 2 1.4후퇴로 피난을 횡성까지, 3차 피난으로 청주까지, 4차 전쟁을 피해 대성리까지 피난하여 모진목숨 용케 살아났다. 휴전이 되어 전쟁이 멈춰서 일상생활로 돌아와 춘천중학교를 거쳐 춘천고등학교 야간부를 다니며 계속되는 학업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형님들의 수고하며 배려해 주심으로 얻어진 행운이었다.

 

Ⅲ. 재수해서 군대 입대하여 10 3개월 10일을 국민의 의무를 더했다.

어머님이 9살에 질병에 걸려 치료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고 6.25전시에 누님은 결혼식도 못 치르고 시집가시고, 큰 형님은 군속으로 차출되어 횡성전투에서 부상당해 국군수도병원에서 전사하시고, 둘째 형님은 가정을 이루셨고, 위에 형님도 춘천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게 되니 나만 외톨이 신세가 됐다.

춘천지구병사구사랑부에 입대를 자원해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당할 만큼 남들이 기피하는 군대지원도 외면당하는 허약체질이라 5촌 당숙이 사시는 서울로 올라와 임시 직장을 다니다가 또다시 서울병사구사령부로 입대를 자원했는데 혹시나 했으나 다행이 군 자원이 부족하여 논산훈련소에 가서 신체검사를 하게 되어 일행과 더불어 기차를 타고 가며 불합격되면 공자 기차 여행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논산훈련소의 신검을 간단해서 일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합격을 받아 당당한 대한민국의 꼬마군인이 됐다.

논산훈련소에서 권현규훈병의 인도로 첫 주일부터 훈련소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기쁨누리며 기초훈련을 마치고 광주 육군통신학교에서 유선 반과 무선 반을 나누는 시험에서 성적이 좋아 18주간의 무선정비 반을 마치고 최전방에 배치되니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군인들만의 세계였다. 군에서 처음 시행하는 장기복무제도(S.T)에 자원하여 10년 동안 국가에서 의, , , 문제만 아니라 봉급까지 주면서 정시, 정량 식사가 연약한 나를 강한 육체로 거듭나게 만들어 주어 국가에 큰 은혜를 입었다.  

 

. 필리핀에서 모스크바로 보내신 하나님의 깊으신 뜻

군 조직 사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왕따를 당하다가 신앙의 자유와 자립을 선택하여, 1967 2 22일 군생활 10 3개월 10일을 마감하고 자원제대하고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축사와 주택을 개조하여 신림교회을 개척 봉사하다가 1975 2월에 목회로 부름 받아 국내목회 18년을 마감하고 필리핀으로 선교사로 파송 받아 1 2개월간 열심히 사역하던 중 소련이 개방, 개혁정책으로 개방되고 한국선교사들이 선교사로 파송받아 고려인 밀집지역에서 사역하면서 전명구목사가 초청받고 집회를 하고 돌아 온 후에 나를 만나 류선교사님이 모스크바에 가면 큰 일할 수 있으니 기도해 보라는 제의를 영 음으로 알고 아브라함의 후예답게 즉석에서 아멘! 했다.

인간적으로는 선교의 A급 지역인 필리핀을 떠나 꿈에도 없었던 C급 선교지인 소련으로 간다는 것이 마음에는 불가능했지만 주님이 원하시는데 NO! 이 있을 수 없었다. 막둥이(세라)를 데리고 내외가,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애급으로 내려 가듯(4: 20) 1993 9 10일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호랑이 굴속같이 어둠 컴컴하고 보안이 불확실해서 낮에도 두 사람씩 다니고 밤에는 출입을 금하라는 대사관의 훈령이 있는 미지의 땅, 음폐, 엄폐하라는 선임선교사들의 권고를 들으며, 3답답(말 못하니 입 답답, 글자도 못 읽으니 눈 답답, 듣지도 못하니 귀 답답)이가 1993, 10, 3일 통역을 대동하고 모스크바양문교회를 개척했다.

년 말에 한국 감리교선교사 4가정(필자 가정, 조영철선교사 가정, 윤은철선교사 가정, 성락인선교사 가정) 1일 친목모임을 야외에서 가졌다. 여기에 안내를 겸한 임시 모임처가 탈 북한 이민복씨가 합류했는데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난 후 처음 만나는 북한 사람이다.

 

Ⅴ. 북한 동족을 품게 된 동기

친목 모임을 마치고 몇 일 후에 왜소한 이민복씨를 초대하여 북한의 실정과 그의 탈북 경로를 통해 고난의 행군을 들으며 북한주민들의 굶주리며 죽어 가는 참혹한 생활상과 과학기술원으로 다수확 농법을 연구해서 당에 보고했더니 그것이 지도이념에 어긋난다며 불이익을 당해 중국으로 도피했다가 잡혀 북한에 들어가 감옥살이에 쥐를 잡아 맛있게 먹으며 겨우 출옥한 후 재차 중국으로 탈북 해 신변에 위협을 느껴 중. 러 국경을 가로지르는 아무르강을 떠내려오며 하늘아! 날좀 살려다오!’ 하늘에 호소가 기도가 되어 러시아에 무난히 입국해 가진 사선을 넘고 넘은 고난의 행군 이야기를 들으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고 얼마나 통분했던지? 장 시간 생소했던 북한의 실정을 들고, 지금도 러시아 각지를 떠돌아 다니며 냉대 받는 탈북자들의 소식을 들으며 점심식사 기도가 복받쳐 오르는 눈물로 끝냈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느꼈고 내 동족 내 민족을 품게 되는 작은 나비의 날개짓을 하기로 결심하는 결정적인 동기가 됐다.     

모스크바에서 탈북민 보호 사역은 북한대사관과 보위부원들이 활보하여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데도 초기에는 한국선교사들이 인정과 동정으로 감수하며 도왔으나 1996하바롭스크에서 한국계 미국선교사가 이 사역을 하다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자 가족의 위험을 방지하려고 모든 선교사들이 외면했다.

그러나 민족의 지도자 모세(32:32), 선교사에 모델 바울(9:3)의 동족사랑의 모습을 본 받고, 인생 경험, 목회 경험, 인생말년을 맞아, 이 사역(신이 보내주신 사람들)을 위하여 필리핀에서 러시아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깊은 뜻(45: 5)으로 알고, 노출을 염려하여 여러 번의 이사, 400km내에 있는 교단 교회들을 전전하며 14년 간 돌봐주다가 2007 9추방령을 받고 아내는 혼자 남아서 계속하고, 나 홀로 귀국하므로 순직을 각오하고 하던 사역을 마치게 해 주셨다. 귀국 후 안전한 한국에서 2011, 5, 30북한이탈주민사랑협의회를 통일부에서 사단법인 승인을(285) 받고, 독일 앙게르 메르켈총리(동독 목사의 딸)를 롤 모델로 비록 힘은 없으나 최선을 다해 나비의 날개 짓을 하는 동족사역 23년 차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딤후4:8), 목회자로는 은퇴를 했으나 선교사는 은퇴가 없으므로, 곧 닥쳐올 남북통일 후 북한에 각계, 각층의 중간 지도자와 북한복음화의 평신도 선교사 양성을 목표로 계속 나비의 날개 짓을 하여 곧 닥쳐오는 통일과 북한중간지도자들이 펼칠 큰 역할의 나비효과를 기대하면 계속하렵니다.

모스크바에서 혼자서 역경을 버티고 사역하던 아내에게도 비자를 연장해 주지 않아 18년 만에 완전 철수하면서, 모스크바에서 18년 간 양 날개 선교 사역은,

 

1. R.M.C. 교단 창립하여 러시아 정부에 등록(No352), 지금은 운영을 인천대은교회(전명구감독)가 맡아 계속하고,

2. 이탈주민 96명을 한국으로 오는 귀국을 도와준 선교의 열메를 끝으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2015, 10, 25

 

참고자료: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앤서니 라빈스 저,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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